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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의에서 놀이로, 이제 세계가 즐기는 'K 불꽃쇼'로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제의에서 놀이로, 이제 세계가 즐기는 'K 불꽃쇼'로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15) 함안낙화놀이

숯가루로 만든 낙화봉 불 붙여

꽃잎처럼 흩날리는 불꽃 장관

20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유명

K팝 공연 접목 등 ‘관광상품화’

군, 글로벌 축제 정례화 추진

4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 일원에서 ‘함안낙화 페스티벌 with MyK FESTA’가 열리고 있다. /류민기 기자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경상남도 무형유산 ‘함안낙화놀이’를 두고 쓰는 게 아닐까.

함안 괴항마을에서는 매년 초파일(음력 4월 8일·부처님 오신 날) 밤, 마을 어귀 무진정 일원에서 숯가루로 만든 낙화봉으로 불놀이를 펼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연못 위로 쏟아지는 불꽃(낙화·落火)은 마치 꽃잎이 흩날리듯 ‘낙화’(落花)를 떠올리게 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함안낙화놀이는 오늘날 국내를 넘어 해외로 알려지고 있다. 무형유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세계인이 찾는 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5월 24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 일원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함안낙화놀이’ 공개행사가 열렸다. 함안낙화놀이보존회 회원들이 낙화봉에 불을 붙이고 있다. /함안군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진 불놀이

낙화놀이는 밤에 벌이는 불놀이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졌다. 함안낙화놀이처럼 초파일에 가장 많이 열렸으며, 정월 보름날(음력 1월 15일)과 칠월 기망(旣望·음력으로 매달 열엿샛날)에도 펼쳐졌다. 숯·한지·줄 등이 공통으로 사용되며, 사금파리·소금·쑥·유황 등이 첨가되기도 한다.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진 작은 조각)나 소금이 들어가면 폭음 소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낙화놀이는 줄불놀이형(함안낙화놀이)을 비롯해 장대불놀이형·불단던지기형 등이 있다. 불교 전래 이전부터 있었던 토착 불놀이, 불교 전래 이후에 들어온 제등·연등놀이, 조선시대 유교적 양반 놀이 등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낙화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낙화놀이는 제의보다 놀이적 성격이 짙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 민간의 낙화놀이는 관등(觀燈·초파일이나 절의 주요 행사 때에 등대를 세우고 온갖 등을 달아 불을 밝히는 일) 문화와 연관됐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국가 차원의 연등회는 중단됐으나 민간에서는 전승됐다. 자녀의 안녕을 비롯해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성격이 강했으며, 인상적인 등을 걸기 위한 경쟁 양상으로 전개됐다.

5월 24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 일원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함안낙화놀이’ 공개행사가 열리고 있다. /함안군

4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 일원에서 ‘함안낙화 페스티벌 with MyK FESTA’가 열리고 있다. /류민기 기자

조선시대에 놀이적 성격 짙어져

“아전들이 불꽃(落火) 수백 개를 따로 만들어 나무 꼭대기와 암벽 등지에 걸어놓았다. 바람에 따라서 어지럽게 흔들리며 현란하게 빛났다. 떨어져서 바라보는데 참으로 하나의 신기한 경관이었다. 마을의 등불이 지난해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아 태평의 기상을 점칠 수가 있다.”(<함안총쇄록> 중)

1889년부터 1893년까지 함안군수를 지낸 오횡묵이 쓴 <함안총쇄록>에는 낙화놀이와 관련한 기록이 두 차례 나온다. 기록을 보면 대부분의 민가에서 등불을 매달았으며, 아전들은 나무와 암벽에 매달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파일에 열렸다는 점, 사람이 모여들었다는 점, 불꽃이 떨어졌다는 점 등은 오늘날과 같지만 기록 속 장소와 현재 개최 장소는 달라졌다.

조선 전기 1586년 군수로 부임한 정구가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했다고도 전해지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1972년 발간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경상남도편에서는 낙화놀이를 조선시대 서생(書生)들이 시회(詩會)를 열 때 곁들인 놀이로도 소개하고 있다. 문헌과 민속조사 등을 종합하면 조선시대 함안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마을에 설치된 ‘숯(먹)의 공간’. 심근영 작가의 작품으로, 마을 창고를 개조해 마을 아카이브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류민기 기자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마을에 설치된 ‘숯(먹)의 공간’ 내부. 심근영 작가의 작품으로, 마을 창고를 개조해 마을 아카이브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류민기 기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K 불꽃쇼’

함안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 중단됐지만 괴항마을 주민들에 의해 1960년 복원됐다. 이후 전승되다가 단절되기도 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2001년 함안면민들이 주축이 돼 지금의 함안낙화놀이보존회인 이수정낙화놀이보존회를 결성하면서 전승 기반이 강화됐다. 2008년에는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함안낙화놀이는 이제 세계인을 맞는 축제로 변모하고 있다. 2020년 이후로 예능 프로그램과 TV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2024·2025년에는 한국관광공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과 연계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열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대만·일본인 약 1300명이 관람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한국 관광의 별’ 지역특화콘텐츠 부문에도 선정됐다. 올해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대형 한류종합행사 지자체 연계 공모사업’에 선정돼 이달 3·4일 ‘함안낙화 페스티벌 with MyK FESTA’가 열렸다.

“낙화야!”

4일 오후 열린 행사에서 어둠이 무진정 일원을 삼키면 삼킬수록 낙화봉은 불꽃을 쏟아냈다. 좌석 지정 예약제가 도입되고 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행사장은 질서정연했다. 홍콩·대만 등 외국인 관광객 약 1000명이 함께하는 가운데 사회자는 영어로도 사회를 진행했다. 공연을 펼치면서 운치를 더한 소향·서도밴드 등 출연진도 영어를 구사하며 ‘K 불꽃쇼’를 장식했다.

함안군과 함안낙화놀이보존회는 함안낙화놀이를 상품화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정례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보존회 이응주 회장은 “이번 행사에서 호응이 좋으면 상품화를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이야기가 오갔다. 나름대로 괜찮다고 판단되며, 앞으로는 활성화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국가무형유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마을에 설치된 ‘불의 공간: 낙화봉 제작소’. 심근영 작가의 작품으로, 마을 주민들이 낙화봉을 만들던 공간을 활용해 불꽃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류민기 기자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마을에 설치된 ‘불의 공간: 낙화봉 제작소’ 내부. 차인호 작가 등이 참여해 세 개의 방으로 조성했다. /류민기 기자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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