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중소기업 약진···산업 생태계 재편 신호탄
김민석 국무총리(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대한민국 산업 지형의 무게추 중심이 기술 자립형 중견·중소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 대한상의)가 31일 개최한 '제53회 상공의 날 기념식'은 기술력을 갖춘 중견·중소기업이 국가 산업 발전을 주도하는 현실을 공고히 했다. 전체 산업 훈·포장 수훈기업 17개사 중 16개사가 중견·중소기업에 돌아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 심화 속에서 이들이 보여준 ‘소부장 국산화’와 ‘인공지능(AI) 기반 제조 혁신’은 산업의 구조적 전환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민간의 실행력과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겹치면서 과거 오일쇼크 당시 상공인들이 보여준 저력이 다시 소환되는 국면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은 각국에 핵심 산업의 자립을 강제했다. 이번 상공의 날 수상 기업들은 이 흐름 속에서 소부장 기술 주권을 확보하며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성호 유니테크 회장은 40여 년간 산업용 접착 소재 국산화에 매진하며 LNG 운반선용 초저온 접착제 시장의 98%를 석권하는 성과를 냈다. 약 4,700억 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창출하며 우주 발사체, 전기차 배터리 등 국가 전략 산업의 자립도를 높였다. 2023년 미국 공장 설립 등 해외 거점 확대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폈다.
정병기 계양정밀 대표이사는 수입에 의존하던 자동차 엔진 핵심 부품인 터보차저를 국산화해 대규모 해외 수출을 이끌었다. 김종섭 에코프로에이치엔 대표는 HBM 반도체 소재와 이차전지용 고부가 첨가제 개발로 기술 자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통해 산업 생태계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했다.
AI 기술은 전통 제조업의 생산 방식과 가치 사슬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력이다. 이번 수상 기업들은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종훈 인천도시가스 회장은 AI 기반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도입해 안전 관리를 디지털화했으며, 친환경 도시가스 전환으로 저탄소 에너지 생태계를 이끌었다. 윤혜섭 다인정공 회장은 공정 데이터 통합과 AI 기반 물류 시스템으로 제조 혁신을 이루고 로봇 사업부 신설로 신산업에 진출했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사장은 독보적인 AI 반도체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 1위를 지키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차세대 생산 거점 구축과 대규모 신규 채용은 국가 반도체 산업의 미래 성장 기반을 확고히 다진 결과이다.
김재산 코리아에프티 대표는 전기차 열관리 및 차세대 연료 시스템 핵심 기술 확보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했다. 이 기업들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업 구조 재편과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번 상공의 날은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역’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산업 훈·포장 수훈 기업 중 중견·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14개사에서 올해 16개사로 확대됐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기술력 기반의 강소기업이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들의 약진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특정 산업 분야의 기술 종속성을 벗어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특정 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나 기술 격차는 글로벌 경쟁에서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 결국 산업의 승패는 핵심 기술 자립과 유연한 사업 구조 전환 능력을 갖춘 기업에 달렸다.
위기 속 기회를 잡을 기업들은 이제 다음 단계의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 이택선 오산씨네마 대표의 데이터 기반 운영이나 서경아 비.엘.아이 대표의 독자적 필터 기술처럼 서비스업과 환경가전 분야에서도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두드러진다.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자립과 혁신이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든다.
정부의 ‘경제 대도약 원년’ 선언과 맞물려 산업계의 자발적인 혁신 노력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과거 1차 오일쇼크 극복 사례처럼 이번 복합 위기 또한 기술 혁신과 체질 개선으로 돌파하는 모습이다.
강명수 대한상의 회원협력본부장은 “이번 기념식은 국가 경제를 일궈온 상공인들의 업적을 조명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하며 자긍심을 높이는 자리였다”며 “최근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렵지만 그동안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해 온 상공인의 저력을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이넷뉴스 임효정 기자(im@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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