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권사들이 지난해 자기자본(PI)으로 투자한 타법인 출자 규모가 1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한 해 거둔 평가손익만 2조원이 넘었다. 상장법인 주식부터 비상장법인 지분, 사모펀드 투자 등 범위도 다양했다. 코스피가 7800선을 돌파하는 등 주요국 증시 전반적으로 호황을 맞으면서 올해 증권사 PI 투자 평가이익도 급증할 전망이다.
증권가 전경 / 조선DB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10대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NH·삼성·메리츠·KB·하나·키움·신한·대신) 사업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지난해 이들 증권사가 취득한 타법인 출자 규모는 1조817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9949억원) 대비 82.6% 늘어난 규모다. 보유 지분의 가치 변동분인 평가손익은 3091억원에서 2조1573억원으로 597.9% 확대됐다.
회사별로 보면 한국투자증권의 PI 투자 평가손익이 8932억원으로 가장 컸다. 평가손익 확대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법인(계열사 및 경영참가 법인 제외)은 우리금융지주였다. 평가손익만 3415억원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과점주주로 참여해 지분 4%(현재 3.7%) 확보한 뒤 10년째 평가이익 효과를 보고 있다. 누적 수익률만 133.3%다.
해외투자에서의 이익도 컸다. 한국투자증권은 작년 9월 ‘한국투자글로벌사모투자’에 출자하고 2763억원의 평가손익을 올렸다.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글로벌 신성장 분야 투자를 위해 설립한 사모펀드(PEF) 형태의 법인이다. 사모펀드라 편입 종목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에 투자하는 ‘한국투자Re-UpⅡ펀드’도 평가손익 96억원으로 상위권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부터 ‘한국투자Re-UpⅡ펀드’(지분 16.6%)에 698억원을 투자해 왔는데, 이 펀드엔 앤스로픽, xAI 등이 일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이 2024년부터 240억원을 쏟아부은 ‘한국투자 컨티뉴에이션 l 펀드’(지분 80.0%)는 스페이스X 임직원 구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스페이스X에 투자한다.
지난해 10대 증권사 자기자본(PI) 투자 증가액 및 평가손익 / 윤승준 기자
방산 부품제조사 MNC솔루션 등을 담고 있는 ‘웰투시인베스트먼트제2호’ PEF에서 1300억원의 평가손익을 봤다. 그밖에 SK온(지분 0.7%), 롯데글로벌로지스(14.0%), 카카오모빌리티(0.2%), 직방(0.5%), 비바리퍼블리카 우선주 등 국내 비상장기업 지분도 보유 중이다.
미래에셋증권은 네이버그룹에서 큰 평가손익을 봤다. 지난해 평가손익 1559억원 중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에서 거둔 이익이 각각 1228억원, 354억원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은 2017년 네이버(지분 1.8%)에 5000억원, 2020년 네이버파이낸셜(25.5%)에 6793억원 투자했다. 작년 말 장부가액과 비교하면 누적 수익률은 36.5%, 69.6% 수준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의 경우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모회사인 두나무와 합병을 앞뒀다. 합병 후 합작법인이 미국 증시 상장에 나선다면 미래에셋증권이 보유한 네이버파이낸셜 장부가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펀드 투자 성적도 우수했다. 국내외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미래에셋LG전자신성장투자조합1호’에서 160억원, 헬스케어·ESG·신성장 기업을 담고 있는 ‘미래에셋케이티앤지신성장투자조합1호’에서 113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평가손익이 잡히지 않았지만, ‘미래에셋글로벌스페이스투자조합1호’(지분 89.57%)과 ‘미래에셋글로벌섹터리더투자조합1호’(95.12%)에서 글로벌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를 투자하고 있다. 상장 시 평가손익이 더 커질 수 있는 부분이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3720억원의 평가손익을 올렸다. 우리금융지주(평가손익 3415억원)와 PEF인 ‘비젼사모투자합자회사’(26억원), ‘헬리오스 제8호 사모투자합자회사’(25억원) 등에서 큰 이익을 봤다. 작년 한 해 1927억원의 평가손익을 올린 NH투자증권은 딥테크·바이오·AI·ICT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인 ‘인터베스트 딥테크 투자조합’(120억원)과 코스닥 상장사 알테오젠 전환우선주(99억원) 등이 주요 투자처였다. 그밖에 삼성증권은 알지노믹스(235억원), KB증권은 KB발해인프라(73억원), 대신증권은 삼성물산(1225억원) 등에서 큰 평가손익을 기록했다.
증권사별 PI 투자 주요 기업 / 윤승준 기자
증권사 PI 투자 평가손익은 올해 더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가 주로 투자하는 주식시장이 AI발(發) 반도체 호황 등을 통해 신고가를 경신하면서다. 국내 상장법인 기업가치는 증가세다. 10대 증권사가 투자한 상장사 72개(작년 말 지분 보유 기준, 계열사 및 경영참가 법인 제외) 시가총액은 8일 기준 3조2898억원으로 작년 말 장부가액 2조9133억원 대비 12.9% 늘었다.
대신증권이 보유한 삼성물산 기업가치는 5223억원(시총 기준)으로 작년 말 장부가액(3186억원) 대비 76.5% 커졌다. 같은 기간·조건으로 ㈜LG(742억원)는 35.0%, 신한지주(118억원) 27.6%, 에스투더블유(13억원) 108.4% 증가했다. 특히 삼성물산에 대해선 2022년부터 투자를 시작했는데 대신증권이 약 4년간 거둔 투자 수익률만 282.2%(3062억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연초 이후 티움바이오(16억원)에서 73.9%, 무진메디(6억원)에서 49.6%, 코오롱생명과학(19억원)에서 23.4%, 우리금융지주(8883억원)에서 17.3% 투자 수익률을 각각 기록했다. 그밖에 미래에셋증권은 씨엠티엑스(22억원)에서 33.6%, NH투자증권은 키움증권(299억원)에서 54.8%, 삼성증권은 코람코더원리츠(204억원)에서 17.3%, KB증권은 천보(545억원)에서 23.7%, 하나증권은 이노스페이스(6억원)에서 43.4% 등에서 높은 수익률을 봤다.
증권사 PI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확대 속도는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혁신기업의 펀딩, 자금 조달 시장에 대한 수요가 많고 정부 정책 자체도 생산적 금융, 모험자본 투자에 대해 위험액 산정이나 여러 지원 방안이 많아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은 우호적”이라면서 “다만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있어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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