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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문일침 (頂門一鍼)] ‘23만 호’ 숫자보다 청와대 ‘범부처 신속 추진단’이 우선이다

정부가 ‘8·13 대책’으로 수도권 23만 호를 공급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벌써 1년 만에 여섯 번째 대책이다. 정부는 공공택지 착공 기간을 68개월에서 37개월로 절반 가까이 줄이겠다고 한다.

[정문일침 (頂門一鍼)] ‘23만 호’ 숫자보다 청와대 ‘범부처 신속 추진단’이 우선이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정부가 ‘8·13 대책’으로 수도권 23만 호를 공급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벌써 1년 만에 여섯 번째 대책이다. 정부는 공공택지 착공 기간을 68개월에서 37개월로 절반 가까이 줄이겠다고 한다. 그래도 첫 삽은 이재명 정권 말기에 뜨게 되지만, 토지 보상과 이주, 주민 협의와 각종 인·허가는 속도전을 외친다고 저절로 사라지는 절차가 아니다. 기존 공공택지 사업도 바로 이런 문제에 막혀 지연을 거듭해 왔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무슨 수로 31개월을 단축하겠다는 것인지, 숫자부터 내놓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방안부터 보여줘야 한다.

식재료 수급도 안 되고 레시피 고민도 없으면서 “음식 나오는 시간만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하는 식당과 다를 바 없다. 현장의 막힌 혈관은 그대로 둔 채 테이블 수만 늘려 놓았으니, 국민 눈에는 그저 ‘메뉴판 숫자의 재탕’으로 보일 뿐이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1987년만 해도 1억 원 남짓이던 압구정 현대아파트 35평형은 노태우 정부 초기인 1988년 2억 5천만 원으로 뛰었다. 계속 더 뛸 조짐은 나타났다. 전세난과 집값 폭등으로 민심은 흉흉했고 사회적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벌컥 뒤집어졌다. 1991년에는 4억 원에 육박하며 4배 가까이 폭등했다. 80평형 대형은 1987년 3억 원대에서 1988년 7억 5천만 원을 찍고, 1991년에는 무려 15억 원을 넘어서며 단 4년 만에 5배나 치솟았다. 이 상상 초월의 집값 폭등을 잡아낸 결정타가 무엇이었나. 바로 1989년 청와대와 정부가 명운을 걸고 밀어붙인 ‘주택 200만 호 공급’과 분당·일산 1기 신도시 신속 건설이었다.

생전 장수홍 회장이 직접 들려준 비화다. 1988년 당시 대구의 청구주택 장수홍 회장은 주말이면 열차로 대구에 내려가던 청와대 문희갑 경제수석 옆자리를 노렸고 바짝 붙었다. 매주 열차 안에서 나란히 앉아 분당 개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고 헬기 시찰까지 동행하며 치밀하게 기회를 포착했다. 장 회장의 노력으로 분당을 개발하기로 결정이 되자 수도권 시장 진출을 노린 그의 무기는 세심한 아파트 구조와 주부를 배려한 주방 설계였다. 이 차별화 전략으로 청구주택은 쟁쟁한 서울 대형 건설사를 물리치고 분양률 1위를 차지했다.

민간 건설사의 이 같은 파격적인 도전과 성공 뒤에는 과감하게 판을 깔아준 강력한 추진 주체가 있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전담 기획단을 꾸려 부지 수용과 인·허가를 속전속결로 뚫어낸 결과, 노태우 정부 시절 1기 5대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에 총 약 30만 호의 주택이 건설되었으며, 그중 분당이 약 9만 7천600호로 가장 많은 물량을 담당했다. 1993년 1기 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끝없이 치솟던 압구정 현대 35평형은 2억 원대로, 80평형은 12억 원대로 떨어지며 비로소 집값이 안정을 찾았다.

주택 공급의 성공은 ‘23만 호’라는 숫자 공약보다 현장을 진두지휘할 강력한 실행 조직에 달려 있다. 물론 지방자치제도와 재산권·환경영향평가 등 사법적 절차가 완비된 지금, 대통령실이 직접 행정 집행을 다 뚫어내는 관치 행정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더욱 청와대에 국토부·행안부·지자체·민간 전문가가 총망라된 대통령 직속 ‘범부처 신속 추진단’이 필요하다. 부처 간 핑퐁과 지자체 갈등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대통령이 서울시장도 자주 만나 설득하고 추진단을 직접 챙기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화려한 대책안이 아니라 현장을 파고드는 강력한 집행력이다. 뚝심 있고 추진력 좋은 민·관 실무 전문가를 모아 오직 주택 공급에만 몰두할 수 있는 특공대를 가동해야 한다. 이들이 달 나라, 한강, 청와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닥공(닥치고 공급)’할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부지 기획부터 인·허가까지 복잡한 내비게이션 경로를 싹 뚫어줄 ‘슈퍼 하이패스 권한’을 지원단에 부여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감사 면책권 보장과 원스톱 인·허가 특별법 제정까지 청와대가 결단해야 비로소 행정에 속도가 붙는다.

이제 정상적인 땅을 구해 아파트 공급하기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결국 주택 공급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화려한 숫자의 ‘메뉴판’이 아니라, 현장에서 막힌 혈관을 뚫어낼 ‘칼날 같은 전담 실행팀’의 뚝심이다. 이들이 묵은 규제를 혁파할 과감한 해법을 내놓을 때, 대통령실이 직접 칼을 뽑아 들고 판을 깔아주지 않는 한, 추가 공급은 또 하나의 허상으로 남을 뿐이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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