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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동칼럼]북·미, 중간타협의 길은 없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전격 축소를 지시하며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쏘아올렸다.

[정동칼럼]북·미, 중간타협의 길은 없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전격 축소를 지시하며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쏘아올렸다. 이를 중간선거를 앞둔 미·이란 전쟁의 출구전략용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8년 전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유리한 동북아 정세에 올라탄 북한의 협상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안은 의도를 떠나 즉흥적 결정이 아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에 기초한 전략적 판단이다. 올 초 해리스 여론조사 발표에서도 북·미 대화를 지지하는 미국인이 70%가량에 달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최근 북한 경제는 제재 속에서도 3년 연속 3%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제2경제 부문에도 활력이 나타나고 있다. 북·중 국경을 중심으로 비공식 무역이 늘어나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대가로 받은 경제적 지원도 영향을 미쳤다. 북·러 자동차 다리와 북·중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목전에 둔 것도 향후 교류 확대의 예고편이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 하노이 북·미 회담 실패를 복기해왔고 미국 중간선거 이후 대북정책이 지속될지에 대한 확신도 부족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은 이익의 균형을 모색할 수 있다. 단번에 풀기 어려운 북한 비핵화가 근본 문제라면 이를 유보한 채 단계를 나눠 쟁점을 절충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지금의 트럼프가 ‘트럼프 이후’보다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실제 트럼프는 참모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하는 것과 달리, 여러 차례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칭했고 북한이 57개의 핵무기를 가졌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핵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북·미가 중간 수준에서 접점을 찾고 다음 단계를 협의할 수도 있다. 일단 북한은 제7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중단하며 북·중 협력의 공간을 열었다. 이어 8월 김여정 담화를 통해 러시아 추가 파병설은 헛소문이라고 일축해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띄웠고,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난도 절제해왔다.

문제는 중간 지점에서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다. 그동안 북·미는 정상회담 성과의 구속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전술적으로 협력하는 ‘가짜 친구’(superficial friend)로 지내왔다. 따라서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과제를 미룬 채,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해 절충을 모색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중국도 일부 제재를 풀되 위반 시 처벌을 다시 강화하는 ‘스냅백’(snapback) 방식을 제안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인민경제의 생명선’으로 보는 석탄 수출을 미국이 허용해 협상의 문턱을 낮춘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좁은 문이 열릴 수 있다.

실제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양국은 협력의 모멘텀을 찾았고, 9월 말 미·중 정상회담과 유엔총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트럼프가 여기에 화답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트럼프 역시 11월 중순 중국 선전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대화를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에 오랜 대미 협상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면서 중재에 나설 수 있다. 설령 APEC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연말까지는 협상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 지각판의 변화를 북·미관계나 중국의 역할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제안한 바탕에는 미국을 상대로 한반도 문제의 절박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우리 외교의 지분도 있다. 또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 것 역시 두 차례의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한반도 이슈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결과다. 우리는 선제적이고 창의적 방안으로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동시에 일각의 ‘한국배제론’ ‘동맹약화론’ ‘북핵용인론’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 역사적 기회를 눈앞의 작은 유불리만 따지다 놓쳐버린다면 한반도의 겨울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우리가 한 걸음 앞서 걸어야 한다. 이것이 유엔총회와 APEC 정상회의 등을 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절박한 문제의식이어야 한다. 북한 체제 인정과 국호를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해 북·미와 북·일 교차 승인을 제의하고, 전략적 자율성도 확보해야 한다. 한비자의 말처럼 “배를 타고 가는데 물의 흐름이 바뀌었다면 노 젓는 법도 바꾸어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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