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생산능력'이다 : 미국의 무기 부족이 던지는 경고[기고]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
2026-04-20 14:11:13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
1·2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승패가 군대 규모나 무기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자동차 산업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를 '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로 전환하며 민간 제조업을 군수물자 생산에 총동원했다.
대표적으로 포드는 대규모 공장을 활용해 B-24 폭격기를 대량 생산했고, 제너럴모터스는 전차와 군용 트럭,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다. 크라이슬러 역시 전차 생산에 참여하며 자동차 기업들이 전쟁 수행의 핵심 축으로 기능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롤스로이스를 중심으로 항공기 엔진 생산을 확대했고, 독일은 폭스바겐, 다임러-벤츠 등 민간 제조업 기반을 군수 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결국 전쟁은 오래전부터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 역량이 총동원되는 '산업 총력전'이었다.
현대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최근 미국이 무기 재고 부족으로 민간 제조기업까지 군수물자 생산 확대를 요청했다는 소식은, 과거 '산업 총력전'의 장면이 다시 소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탄약과 정밀무기를 대량으로 소모했고, 그 결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조차 무기 비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토마호크 미사일과 요격체계 부족으로 일본에 대한 납품 지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동맹에 기반한 군사력 공급 역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조건부 자산'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본 사안의 핵심은 단순한 재고 부족이 아니다. 전쟁의 본질이 다시 한 번 분명해지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누가 더 빠르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수렴하고 있다. 정밀유도무기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쟁은 고비용·대량소모 구조로 전환되었고, 단기간 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산업 기반이 곧 군사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자동차, 항공엔진, 특수차량 기업까지 소집해 군수물자 생산 전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방산기업 중심의 폐쇄적 생산 구조만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다만 오늘날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다. 공급망은 글로벌 차원에서 촘촘하게 얽혀 있고, 핵심 소재·부품은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으며, 첨단 무기체계는 높은 수준의 기술적 정밀도를 요구한다. 따라서 단순한 생산량 확대를 넘어 국가 전체 산업을 아우르는 통합적 생산체계와 전략적 공급망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방위산업에도 분명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동맹에 기반한 무기 공급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사시 동맹국은 자국 수요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은 독자적 생산능력과 비축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미국과 유럽이 겪고 있는 생산 병목은 한국이 글로벌 방산 공급망에서 핵심 생산 파트너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탄약, 화력, 유도무기 체계 등에서 검증된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는 부품·소재 공급망의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식별하고, 핵심 품목의 확보와 대체재 개발 등을 병행함으로써 이러한 위기를 전략적 기회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민간기업의 방산 진입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방위산업은 여전히 높은 규제, 복잡한 인증 절차, 기존 방산기업 중심의 계약 구조, 과도한 보안 요구 등으로 인해 신규 기업의 진입이 매우 어려운 구조다. 이는 평시에는 투명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장점이 있지만, 전시나 긴급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생산 제약으로 작용한다. 미국이 포드와 같은 비방산 기업까지 동원하려는 이유 역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생산 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방산을 특정 방산기업 중심의 산업이 아니라 AI, 로봇, 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 기업까지 참여하는 개방형 산업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산 분야 진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와 진입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민간 기업이 신속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신속획득 체계, 임무기반 소요 설정, 실증 절차 간소화, 사업 성공 시 양산 연계 보장, 다수 공급자 계약 구조 등을 통해 민간기업이 초기 단계부터 방산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실질적 무기 공급자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결국 방위산업은 더 이상 단순히 무기를 개발·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다. 이는 공급망, 생산능력, 기술, 인력, 그리고 민간 산업 기반까지 포함하는 '국가 총력 산업'이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 성능이 아니라, 누가 더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더 빠르게 생산하며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번 미국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유사시 얼마나 빠르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민간기업이 즉시 무기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무기체계의 경쟁력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생산 전환 능력과 산업 유연성이다. 한국이 진정한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과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고 산업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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