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500만 명의 발길이 이어지는 전주 한옥마을. 명실상부 지역 관광의 메카다. 그러나 빅데이터가 가르키는 속살은 ‘풍요 속의 빈곤’에 가깝다.
단체 중심의 중대형 상가는 31%가 넘는 공실률로 신음하고, 관광객 10명 중 9명은 밤이 되면 전주를 떠나는 ‘숙박률 10%의 저주’가 고착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옥마을 인근 부동산 시장의 체감 경기도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이에 본보는 한옥마을의 상권과 관광 이동 패턴 분석 데이터 등을 통해 한옥마을의 외형적 착시에 가려진 실태를 해부하고, 신규 거점 분산의 관광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 본다./편집자 주
▲<실태> 상권 양극화, 5년째 숙박률의 저주
주말 낮 2시, 전주 한옥마을 메인거리인 태조로와 은행로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방문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연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밤 9시가 되면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진다. 한옥마을 중심부에서 불과 한 블록만 벗어나도 거리는 한산해지고, 불이 꺼진 상가 창문마다 ‘임대 문의’ 현수막이 내걸린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화려한 관광객 수 뒤에는 관광객은 많지만, 지역 경제에는 소비가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 전주 관광의 구조적 한계가 숨어 있다.
전주시정연구원이 발간한 ‘전주 상업용부동산 시장 진단과 정책방향’ 이슈브리프와 한국관광데이터랩 자료를 종합하면, 전주 관광 상권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구조적 하락과 상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낮은 숙박률이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한옥마을이 위치한 전주시 완산구의 관광객 숙박 비율은 평균 10.1%에 그쳤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 10명 중 9명이 숙박 없이 당일 방문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관광객 유입 규모는 크지만, 지역 내 체류와 소비가 이어지지 않는 이른바 ‘당일치기 관광’이 고착화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옥마을 상권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2026년 1분기 기준 전주한옥마을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31.24%에 달했다. 이는 같은 권역인 전주 서부 상권 공실률 4.42%보다 7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지역 내에서도 심각한 상권 위축 신호로 해석된다.
한옥마을 내 소규모 상가는 공실률이 사실상 0%를 기록했지만, 임대료는 소규모 상가가 ㎡당 3만9880원으로 중대형 상가(1만6610원)의 2.4배 수준에 형성됐다.
과거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대형 기념품점과 대형음식점은 경쟁력을 잃은 반면, 체험형 콘텐츠와 개성을 앞세운 소규모 점포는 높은 수요를 유지하면서 상권 내부에서도 극심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공실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물주들이 과거의 높은 임대료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까지 겹치면서 상권 회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관광객 수는 많지만, 소비가 특정 구간에만 머무르고, 외곽 상권은 공동화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부동산 시장에도 고스란히 보여진다. 지역 내 투자 여력이 부족한 데다 외부 투자자들 역시 지방 상권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거래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서 H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62) 씨는 “부동산 가격은 결국 수요가 있어야 움직이는데 한옥마을 주변은 메인거리를 제외하면 공실이 많고 매수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거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옥마을 일대는 공시지가가 높아 대부분 10억 원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신규 투자자들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전주 관광의 핵심 과제는 관광객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를 지역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데 있다. 현재와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한옥마을 중심부만 살아남고 주변 상권은 점차 쇠퇴하는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 한옥마을 독점 깨고 ‘핵심·확장·체류·신규’ 4대 거점 길 열어야
전주 관광의 출구는 개별 관광지 단위의 투자가 아닌 ‘관광 이동경로’를 기준으로 한 재설계에 있다는 지적이다.
전주시정연구원은 기존의 단순 관람형 패턴을 체류형-분산형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전주 전역의 관광 거점을 핵심, 확장, 체류, 신규 등 4대 기능별 거점으로 유형화하고 이를 잇는 전략적 연결고리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선 전주 관광의 출발점이나 집결지인 부동의 1위 ‘한옥마을’은 상징성과 접근성을 대표하는 ‘핵심 거점’으로 관리‧운영된다. 동시에 대형 점포 분할 인센티브, 상가 리스크 등 급제 도입보다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통해 한옥마을 상권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관광객의 지갑을 열고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핵심 기반은 라한, 베스트웨스턴 등 브랜드 호텔과 백화점과 몰 등 도심형 편의시설이 결합된 ‘체류 거점’의 활성화다.
5년째 10% 수준에 머무는 숙박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관광객이 하루 더 머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전주동물원과 덕진공원,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 등 북부권 생태관광 자원을 하나의 관광축으로 연결해 확장 거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원도심 문화공간 역시 중요한 분산 거점으로 평가된다.
데이터 분석 결과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신중앙시장’, ‘팔복동 철길’ 등은 최근 중심성과 연계성이 빠르게 높아지며 새로운 관광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공간은 한옥마을과는 다른 문화적 경험과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광객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주 관광이 지금의 ‘한옥마을 일극 체제’에 머무를 경우 체류율과 소비 확대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1500만 명이라는 화려한 방문객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이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넓게 이동하며, 얼마나 많은 소비를 남기느냐다.
관광객을 한옥마을이라는 ‘점’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역을 잇는 ‘선’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전주 관광이 숙박률 10%의 벽을 넘어 체류형 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허강무 전북대학교 교수는 “분위기나 트랜드를 잘 살펴보며 변화하는 패턴에 발맞춰 대책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지자체에서 데이터 분석을 제대로 하고 여행객의 성향이나 머무르는 시간 등을 냉정하게 분석해 정책 대응에 나서야 되는 시점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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