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의 산자락에 아침 안개가 걷히면 과수원은 가장 바쁜 시간을 맞는다. 해가 높이 오르기 전 농민들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잘 익은 복숭아를 고른다. 붉은 빛이 충분히 올랐는지, 과실의 크기가 고른지, 손끝에 닿는 탄력이 알맞은지를 살핀다. 복숭아는 같은 나무에 달린 열매라도 햇볕을 받은 정도와 생육 조건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다. 임실 농가가 ‘수확 시기’를 무엇보다 세심하게 판단하는 이유다.
임실 복숭아는 단순한 계절 과일이 아니다. 중산간 자연환경과 농민의 재배기술, 품질 고도화를 위한 지역의 투자가 겹겹이 쌓여 만든 임실의 대표 특산품이다. 한입 베어 물면 퍼지는 달콤한 과즙과 향, 부드러운 과육에는 산바람과 햇살, 그리고 농부의 긴 기다림이 함께 담겨 있다.
임실은 산과 골짜기가 어우러진 중산간 지역이다. 낮에는 풍부한 햇볕을 받고,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는 환경은 복숭아의 색과 향, 맛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농가들은 이런 자연 조건을 바탕으로 가지를 정리해 햇볕이 나무 안쪽까지 닿도록 하고, 토양 수분과 웃자람을 세심하게 관리한다. 좋은 땅과 기후만으로는 명품 과일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수농가의 공통된 설명이다.
복숭아 농사는 ‘더하는 농사’이면서 동시에 ‘덜어내는 농사’다. 겨울철 가지치기로 나무의 골격을 잡고, 봄에는 꽃눈과 새순을 관리한다. 열매가 맺히면 적과를 통해 상품성이 낮거나 과도하게 달린 과실을 솎아낸다. 나무 한 그루에 많은 열매를 남긴다고 해서 좋은 수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적당한 열매만 남겨야 양분이 집중되고, 크기와 색, 당도, 식감이 고르게 살아난다.
과실 하나하나에 봉지를 씌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비바람과 해충, 강한 햇볕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고 외관 품질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다. 여름철 고온과 장마, 수확기 집중호우는 농가에 큰 부담이지만, 임실 농민들은 매일 과수원을 살피며 병해충과 열과, 낙과 위험에 대응한다. 소비자가 마주하는 매끈한 복숭아 한 알은 이 같은 수많은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
임실 복숭아의 강점은 생산 단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군은 복숭아를 지역 특화작목으로 육성하며 품질과 생산성, 농가 소득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과수산업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신평면 농업기술센터에 미래형 과수 실증시험포를 조성해 복숭아와 사과의 신품종 및 재배기술을 실제 현장과 같은 조건에서 검증하고 있다. 군은 지난 1년간 1억9000만원을 들여 시험포를 구축하고, 복숭아 12종과 사과 5종의 지역 적응성을 확인하는 실증 운영에 들어갔다. 복숭아 12종 가운데 국내 육성 품종은 7종이다.
시험포는 임실 복숭아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현장이다. 기계화 작업이 가능한 팔메트 수형, 햇볕 투과율을 높여 과실 품질 향상을 노리는 다축수형, 나무 생육 특성을 살리는 자연류 수형 등 모두 6종의 재배 모델을 적용해 지역에 가장 알맞은 방식을 찾고 있다. 이는 농촌의 고령화와 계절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대응하면서도, 품질은 더욱 높이기 위한 시도다.
스마트 농업기술도 접목된다. 시험포에는 작업자를 따라 이동하는 운반로봇과 무인 제초로봇 등이 도입돼 작업 부담을 줄이고 있다. 군은 이곳을 단순한 시험재배 공간이 아닌 농업인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활용해 검증된 기술을 농가에 확산할 계획이다. 복숭아 농가 입장에서는 경험에 의존하던 재배방식에 과학적 데이터와 생력화 기술을 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임실 복숭아의 또 다른 경쟁력은 ‘치즈의 고장’이라는 지역 정체성과 만나는 데 있다. 임실군은 복숭아와 매실을 지역 향토자원으로 삼아 농촌융복합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총 20억원을 투입하는 특화품목 6차산업화사업을 통해 복숭아·매실의 상품을 고도화하고, 임실치즈와 연계한 제품 개발 및 부가가치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군은 치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유청과 복숭아·매실을 결합한 ‘헬시 플레저’ 음료 개발 사업으로 농촌진흥청 공모에 선정돼 2025~2026년 1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단순히 생과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숭아를 음료와 디저트, 체험상품, 관광 콘텐츠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수확기에 집중되는 출하 부담을 줄이고, 비정형과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임실을 찾는 관광객에게 복숭아는 지역의 풍경을 기억하게 하는 맛이 될 수 있다. 옥정호의 물안개와 사선대의 풍광, 임실치즈테마파크의 체험에 제철 복숭아가 더해진다면 여행은 한층 풍성해진다. 과수원에서 갓 딴 복숭아를 맛보고, 치즈와 결합한 가공품을 즐기며, 지역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는 경험은 임실이라는 이름을 일상 속으로 오래 남게 한다.
복숭아 수확이 마무리되면 과수원은 잠시 고요해진다. 그러나 농부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나무의 상태를 점검하고, 다음 해 가지치기와 토양 관리, 품종 갱신을 준비한다. 겨울의 휴면과 봄의 꽃, 여름의 성장, 수확의 기쁨은 매년 반복되지만 농부에게 같은 농사는 한 번도 없다.
임실 복숭아 한 알에는 한 해의 기후와 농부의 선택, 지역 농업의 미래가 함께 담긴다. 산바람이 키운 자연의 맛에 세심한 재배기술과 새로운 도전이 더해진 임실 복숭아. 달콤한 과즙 너머에는 ‘잘 익은 과일’ 이상의 가치, 임실 농촌이 지켜온 시간과 앞으로 만들어갈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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