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
저평가 기업 공개 압박…시장 규율 통한 밸류업 유도
중복상장 원칙 금지…모회사 일반주주 권익 보호 강화
코스닥 2개 리그 체계 전환…성장 단계별 시장 재편
불공정거래·회계부정 ‘원스트라이크 아웃’ 강력 제재
2026년 3월 18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개인투자자 자격으로참석한 방송인 장동민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
금융당국이 저평가 기업 공개와 중복상장 제한, 코스닥 시장 구조 개편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자본시장 개혁에 착수했다.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시장 신뢰 회복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한 구조적 개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자본시장 안정화 및 체질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주요 금융당국 관계자와 증권업계, 자산운용사, 학계 전문가, 개인 투자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저평가 기업에 대한 공개 압박이다.
금융당국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동일 업종 내 하위 20%에 해당하는 기업을 반기마다 공개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공개 대상 기업에는 ‘저PBR’ 태그를 부착해 투자자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시장의 평가와 투자자 행동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를 유도하려는 조치다.
PBR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로, 자산 대비 시장 평가가 심각하게 저평가된 상태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기업의 경우 대주주 이익을 위해 주가가 낮은 상태로 방치되는 문제를 의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경우 일정 기간 공개 대상에서 제외하는 인센티브도 병행한다.
자산가치 왜곡 문제 개선도 병행 추진된다.
그동안 일부 기업이 토지 등 자산 가치 상승에도 원가 기준을 유지하면서 실제 가치 대비 저평가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토지 자산의 경우 공시지가를 활용해 장부가와 공정가치 간 차이를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향후 이러한 공시는 다른 유형의 자산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역할 강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금융당국은 스튜어드십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3자 점검체계를 도입하고, 이행 여부에 따라 기관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이 기업 경영 감시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중복상장 규제는 이번 개혁안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되는 구조를 ‘원칙 금지·예외 허용’ 체계로 전환한다.
기존에는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를 상장하는 사례가 빈번했으며, 이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가치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지속돼 왔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한 사례, 카카오가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를 연속 상장한 사례 등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자회사 가치가 모회사에서 분리되면서 기존 주주들이 이익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았다.
앞으로는 단순 분할뿐 아니라 인수·신설 자회사도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중복상장으로 간주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또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 충실의무를 명확히 부여해 의사결정 책임을 강화한다.
코스닥 시장도 대대적인 구조 개편에 들어간다.
기존 단일 시장 체계를 ‘프리미엄 시장’과 ‘스탠다드 시장’으로 나누는 2개 리그 체계로 전환한다.
프리미엄 시장은 성숙한 혁신 기업 중심으로 구성되고, 스탠다드 시장은 성장 단계 기업이 중심이 된다.
두 시장 간에는 승강제를 도입해 기업이 성장 단계에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프리미엄 시장 내에서는 대표 기업 중심 지수를 새로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도 도입할 예정이다.
기술특례상장 제도 역시 확대된다.
기존 바이오, 인공지능, 우주, 에너지 분야에 더해 첨단로봇, K콘텐츠, 사이버보안 등 6개 분야가 추가되면서 성장기업의 자본시장 진입이 보다 용이해질 전망이다.
불공정거래 대응도 전면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합동 대응단을 확대하고 통신조회권과 특별사법경찰의 인지수사권을 강화해 주가조작 등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인다.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과징금 한도를 기존보다 2배로 상향하고, 위반 기간이 길어질 경우 20~30%의 가중 부과를 적용한다.
또 회계부정 책임자는 상장사 임원 취업을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한다.
부실기업 퇴출 속도도 대폭 빨라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내년 6월까지 ‘상장폐지 집중관리 기간’을 운영해 저성과 기업의 시장 퇴출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자율적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도 활성화한다.
M&A 과정에서 일반주주가 거래의 공정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공시 가이던스를 마련하고, 이사회가 매수가격의 적정성과 찬반 의견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본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같은 기업이라도 한국 증시에 상장됐다는 이유만으로 할인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그 원인으로 기업지배구조 문제, 경영권 남용,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 지정학적 리스크, 정책 불확실성 등을 제시했다.
특히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주가조작을 하면 동원된 자금까지 몰수하는 수준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 불안 요인이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노력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자본시장 활성화가 부동산 쏠림 완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본시장 활성화는 국민 자산 증식뿐 아니라 경제 구조 개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시장 안정 조치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을 위해 100조원 규모 이상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상황 장기화에 대비한 추가 확대 방안도 준비해둔 상태다.
증권업계는 이번 개혁안이 밸류에이션 정상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중복상장 규모가 약 1000조원에 달해 글로벌 최고 수준”이라며 “이를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이 주요국과 유사한 수준임에도 PBR이 낮은 이유로 중복상장을 지목했다.
자산운용업계 역시 투자자 신뢰 회복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개인 투자자의 국내 순매수 확대와 ETF 시장 성장 등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제도적 신뢰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인 시장 안정뿐 아니라 장기적인 자본시장 선진화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와 인센티브를 병행한 구조 개혁이 기업 행동 변화와 투자자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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