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21일 범현대 일가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 모였다. 창업자를 기리는 이날 제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현대가(家)의 권력 구조 현주소와 함께 화합의 의미를 동시에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편집=양준서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장손으로서 가문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화합의 리더십’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날 제사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거주했던 청운동 자택에서 진행됐다. 청운동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현대그룹 창업정신이 시작된 상징적 장소다.
청운동 자택의 소유권은 2001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이전됐다. 이후 2015년부터 제사 장소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한남동 자택으로 옮겨졌고, 약 4년 동안 주요 제사가 그곳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2019년 청운동 자택의 소유권이 정의선 회장에게 넘어오면서 제사 장소는 다시 청운동으로 복귀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다. 한남동이 ‘정몽구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면, 청운동은 ‘정주영 창업정신’의 출발점이다.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 세대의 경영 체제에 머무르기보다, 창업자의 정신으로 돌아가 현대가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영권 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한남동이 아닌 청운동을 선택한 점은 ‘화합’의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이날 오후 7시께 시작된 제사에는 주요 범현대 인사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6시 2분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이어 정의선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규 HDC 회장, 정몽원 HL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범현대가가 정의선 회장의 소유인 청운동 자택에 모여 창업자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이는 현대그룹의 정신적 구심점이 다시 청운동으로 돌아왔음을 상징한다.
정의선 회장은 2020년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조부 정주영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재조명해왔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에는 정·재계 인사 2500여 명이 참석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모두 사람에서 시작됐다. 사람을 믿으셨고 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다”고 말했다. 이어 “겨울에 눈이 오면 눈을 보고, 봄에 꽃이 피면 꽃을 보고 시를 지어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개인적 기억을 소환했다.
정주영의 경영철학을 ‘사람을 위한 혁신’으로 재해석한 이 발언은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정의선 체제의 경영 방향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메시지로 읽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끌어낸 서사는 ‘사람 중심 혁신’이라는 철학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처럼 정의선 회장은 현대가의 화합을 이끌면서 동시에 창업정신을 재구성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이 받지 못했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경영 성과를 넘어 창업자 정신의 재해석까지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선 체제의 현대차는 분명 정몽구 시대가 구축한 제조업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정체성의 뿌리는 다시 정주영에게로 향하고 있다. 청운동으로의 복귀는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 전략을 위한 ‘기원의 재소환’이다.
현대차그룹의 출발점은 정주영이다. 그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한국에서 국산 자동차 생산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1975년 출시된 ‘포니’는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로, 단순한 제품을 넘어 산업의 탄생을 의미했다. 기술도 자본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도전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었다. 정주영의 현대차는 ‘없던 산업을 만들어낸 기업’이었다.
이후 현대차의 진화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끌었다. 1999년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그는 외형 성장에 비해 부족했던 품질 경쟁력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당시 현대차의 연간 판매량은 213만 대 수준에 머물렀고,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글로벌 강자들과는 큰 격차가 존재했다.
정몽구 회장은 취임 직후 “2010년까지 세계 5대 자동차 제조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품질경영’을 통해 이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10년·10만 마일 보증’은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결정적 전략이었고, JD파워 품질 평가에서 하위권이던 현대차는 빠르게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그 결과 2000년 약 243만 대였던 판매량은 2010년 574만 대로 증가하며 글로벌 톱5에 진입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정주영이 만든 현대차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진화시킨 ‘탁월한 최고경영자’로 평가된다.
정의선 체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진화’를 넘어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판매 기준 빅3 자동차 기업에 올라섰다. 지난해 727만 대를 판매하며 4년 연속 3위를 유지했다. 도요타(1132만 대)와 폭스바겐(898만 대)에 이어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수익성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20조 원을 넘어 글로벌 2위 수준에 올라섰고, 폭스바겐을 앞질렀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다시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산업의 확장이 아니라 산업의 경계를 바꾸는 시도다.
정주영이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을 만들었다면, 정몽구는 그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정의선은 자동차 산업의 정의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이 변화는 명확한 전략과 시간표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현대차그룹은 약 1조 원을 투자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로봇 사업 진출이 아니라 기업 정체성 전환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현대차는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를 확대해왔다. 2026년 CES에서는 ‘피지컬 AI’ 전략을 공식화하며,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 기업으로의 전환을 명확히 했다.
또한 같은 해 미국 AI 로봇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단행하며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이는 하드웨어 중심 제조기업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중심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의선 회장을 ‘청출어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실적이 아니다. 핵심은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만약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3위에 오른 것에서 멈췄다면, 정의선은 ‘우수한 계승자’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조부 정주영을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성과는 여전히 자동차 제조라는 기존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선은 틀을 깨고 있다. 그는 자동차를 넘어 모빌리티로, 다시 피지컬 AI로 산업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산업 정의 자체를 바꾸는 시도다. 정주영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창업자’였다면, 정의선은 ‘산업을 재설정하는 경영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정주영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CEO였다면, 정의선은 글로벌 산업 경쟁을 주도하는 CEO로 진화하고 있다.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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