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글로벌 파워가 막강해지는 가운데, 대중문화 권력이 외교 무대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방한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개최했던 국빈 오찬은 단적인 사례이다. 청와대 국빈 오찬의 주인공은 정상들이었지만,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이날 오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재계 인사들 그리고 K팝 그룹 스트레이키즈와 배우 전지현 등 문화계 인사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초청을 받았다.
그중 이재용 회장, 스트레이키즈 멤버 필릭스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화제의 인물로 떴다. 이들이 한 공간에서 만들어낸 몇 컷의 사진들은 정치권력의 재편을 상징한다.
이날 필릭스가 자신의 SNS에 올린 이재용 회장과의 셀카와 마크롱 여사가 필릭스와 볼뽀뽀를 나누는 장면은 큰 관심을 끌었다.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 세대들에게도 뉴스거리가 됐다. 이는 단순한 연예 뉴스로 소비된 게 아니다. K팝은 문화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재계 콘텐츠이면서 외교 콘텐츠로서 작동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국빈 오찬은 정치 지도자와 관료, 일부 재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 권력 공간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구조적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장과 필릭스의 셀카는 상징적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쥔 기업 총수와 전 세계 아이돌 팬덤을 움직이는 문화 아이콘의 화합이다. 이 둘이 같은 프레임에 들어옴으로써 외교는 더 이상 정치의 독점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크롱 여사의 행보도 그렇다. 그는 8명으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인 스트레이키즈 멤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필릭스와는 자연스럽게 볼뽀뽀를 하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팬심 표현이 아니다.
이 회장과 마크롱 여사가 공통적으로 필릭스와 각별한 접점을 형성한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다. 우선 필릭스는 호주 출신으로 영어 구사가 자연스러워 외교 현장에서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짧은 시간 안에 친밀감을 형성해야 하는 국빈 행사에서 결정적인 요소다. 또한 서구적 외모와 K팝 아이돌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점도 작용한다. 서구 인사에게 낯설지 않으면서도 K팝의 상징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필릭스는 과거 삼성전자 모델 활동 이력을 갖고 있다. 이재용 회장과는 이미 ‘브랜드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이력은 단순한 광고 출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는 2025년 5월 ‘갤럭시 S25 엣지’ 국내 출시 당시 필릭스와 함께한 론칭 필름을 전면에 내세웠고, 해당 영상은 공개 10일 만에 조회수 1900만회를 돌파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삼성은 공식 뉴스룸에서 필릭스의 날렵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갤럭시 S25 엣지’의 초슬림 디자인과 조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즉 필릭스는 일회성 모델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젊은 세대와 글로벌 팬덤에 자사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선택한 상징 자산이었다.
이 회장 입장에서 필릭스는 아이돌 개인이라기보다 산업과 문화, 외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삼성전자의 대표 이미지’로 선택한 셈이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라는 초일류기업의 글로벌 전략이 기술 우위 전략에서 문화 우위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통해 강력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구축해 왔다.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있어 K팝과 같은 문화 자산은 질적인 도약을 가능케해주는 요소로 꼽힌다.
온라인 반응도 흥미롭다. K팝 아이돌과 재계 총수가 함께 찍은 사진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색 조합’이라면서 "갤럭시 회장님과 모델, 돈 들어오는 짤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재용복’이라는 재기발랄한 표현도 나왔다. ‘이재용복’은 ‘이재용이 주는 복’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또 필릭스의 본명은 이용복이다. 이재용복은 ‘이재용+이용복’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총수와 글로벌 문화 아이콘의 결합은 ‘돈 들어오는 짤’이라는 주장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회장과 필릭스의 셀카, 그리고 마크롱 여사와 필릭스의 볼뽀뽀는 서로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선택한 문화 아이콘이 외교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면서, 기업의 이미지가 국가 간 교류의 접점으로 확장된 구조이다.
즉 기업이 구축한 문화 자산이 외교 현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가 현실화된 사례다. 이 장면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이 기술 중심을 넘어 문화와 외교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의 변화 방향이다. 과거 글로벌 경쟁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의해 좌우됐다면, 이제는 브랜드와 문화, 그리고 소비자와의 감정적 연결이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K팝이라는 글로벌 콘텐츠와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외교 무대에서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는 점은 기업의 영향력이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수준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파는 주체를 넘어 문화를 매개로 세계와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청와대 정상 오찬에서 포착된 이재용과 필릭스의 사진 한 컷은 그 변화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준서 기자 pretty.yang7658@gmail.com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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