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재계, '전쟁·고유가·노조리스크' 복합위기에…"비상경영"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요 그룹에 복합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재계, '전쟁·고유가·노조리스크' 복합위기에…"비상경영"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이주선 기자] 주요 그룹에 복합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경영 불확실성이 날로 짙어지는 가운데 이로 인한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 이른바 ‘삼중고’ 위기에 직면하면서 에너지 부족 등의 다양한 리스크가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기업의 경우 노동조합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공장이 멈춰 설 수 있는 연쇄 총파업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각국이 첨단 기술 경쟁력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상황에서 연이은 악재로 자칫 한국 경제가 고꾸라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임원 경비 줄이고, 출장 땐 이코노미

재계, 전쟁·고유가 악재에 ‘긴축 경영’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대한항공 등 주요 기업은 올 상반기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대내외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이 계속되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축소하는 등의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메모리반도체 사업 호조로 영업이익 57조 2000조원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다. 이에 미국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빅테크 톱5’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가전, TV,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경험(DX) 부문은 아쉬운 성적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 따르면 DX 부문은 올 1분기 약 3조 5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생활가전(DA) 사업부와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의 합산 영업이익은 1500억원에서 2000억원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해 4분기 두 사업부는 6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TV 사업을 전담하는 VD 사업부를 둘러싸고 인원 축소·전환 배치 등의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TV를 포함한 가전 사업 규모를 대폭 줄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경제네트워크(CBN) 등 중국 현지 매체는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중국에서 직영으로 전개하는 가전 사업을 대리점 판매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TCL, 하이얼, 샤오미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급성장으로 현지 시장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조사 업체 AVC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의 중국 가전 시장 점유율은 컬러 TV의 경우 3.62%로 5위, 냉장고는 0.41%로 14위, 세탁기는 0.38%로 15위에 각각 랭크돼 있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

다만 삼성전자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TV 사업 위기설에 대해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입장이다. 용석우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VD사업부의 구조조정 가능성과 관련해 “많은 분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처럼 어려운 처지는 아니다”면서 “완제품만 놓고 보면 경쟁 상황이나 국제 정세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DX부문은 최근 최고재무책임자(CFO) 회의를 통해 올해 주요 목표로 비용 절감을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급에만 적용되던 ‘10시간 미만 비행시 이코노미 클래스 이용’ 규정을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로 확대한 것이다.

LG전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 1분기 1조 7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지만 중동발(發)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고환율·고유가 등의 악재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올 2분기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물류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적 부진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임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비용 효율화 작업에 착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LG전자는 임원들에게 올 2분기부터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장거리 해외 출장길에 나설 때 비즈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석 탑승을 해야 한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직 책임자의 경비를 기존보다 2분의 1가량 줄였다.

고유가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대한항공은 비상 경영을 공식 선언했다. 올 1분기 4조 515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역대 분기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연료비 부담과 고물가로 인한 여행 비용 상승으로 2분기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경영 불확실성에 맞서 대비 태세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대한항공은 단계적 유가 대응과 비용 효율화를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중장기 성장 기반을 다질 예정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부회장은 지난달 사내 공지를 통해 “연료비 급증에 따른 원가 상승에 대비해 이달부터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유가 수준별 단계적 대응 조치를 즉시 시행해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성과급’·포스코 ‘쪼개기 교섭’

노조 리스크에 기업들 ‘속수무책’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기업은 노사 갈등이라는 내부 변수까지 터지며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성과급과 하청 근로자들의 처우 등을 둘러싸고 총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을 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노조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할 것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앞서 영업이익의 10%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올 1분기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자 요구 조건을 상향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 57조 2000조원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뒀다. 이 가운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가 약 9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 반도체 영업이익을 270조원으로 가정하면 이의 15%는 약 40조 50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연구개발(R&D)에 투자한 37조 7000억원보다 3조원 가까이 큰 규모다.

일각에서는 40조원이면 괜찮은 팹리스 기업 하나를 인수·합병(M&A)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SK하이닉스는 2020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할 때 투입한 금액은 약 10조 3000억원 남짓이다.

삼성전자와 노조의 갈등은 더 첨예해지는 모양새다. 최근 직원들의 노조 가입 여부가 담긴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유포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사측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9일 특정 부서의 단체 채팅방에서 부서명, 성명, 사원 번호, 노조 가입 여부 등 정보가 기재된 직원 수십 명의 자료가 오간 사실을 확인했다고 사내 공지했다. 사측은 일부 직원이 노조 가입 사이트에서 동료들의 사번을 입력한 후 ‘중복 확인’ 기능을 이용, 비노조원을 추려내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업무와 무관한 목적으로 임직원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공유한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자 심각한 인권 침해라면서 경기도 화성동탄경찰서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임직원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하고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혐의로 소속 직원 A 씨를 수사기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사내 업무 사이트에 1시간여 동안 2만회 이상 접속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조회·파일 형태로 만들어 제3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고소는 지난 10일 경찰 수사를 의뢰한 ‘노조 미가입자 명단 유포’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만큼 수사기관은 이번 사건이 노조와 인과관계가 있는 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지난달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회사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 있다면 명단으로 관리하겠다”며 과반 노조의 지위를 이용, 추후 회사 사정에 따라 강제 전배나 해고가 필요한 경우 파업 불참자들을 우선적으로 안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노조는 사측과 임금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 오는 23일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다음달 21일부터 오는 6월 7일까지는 총파업도 예정돼 있다. 재계는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피해 규모가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노조의 반도체 생산라인 등 주요 시설 불법 점거를 미리 방지해 경영상 손실을 막으려는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대법원이 포스코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포스코 사내하청 근로자 등으로 구성된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선고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

포스코도 노조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시행 이후 최근 복수의 하청 노조와 각각 개별 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오면서 이른바 ‘쪼개기 교섭’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 포스코 하청 조합원들이 낸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포스코는 매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 그리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등 세 개 하청 노조와 각각 교섭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원청 노조까지 포함하면 포스코는 매년 4개의 노조와 단체 교섭을 해야 하는 셈이다.

특히 철강 산업은 원·하청이 하나의 생산 체계로 묶여 있는 만큼 피해가 기하급수로 불어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일부 하청 공정이 멈추면 전후 공정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 기업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교섭단위 결정 제도는 교섭창구 단일화 틀 안에서 운영될 필요가 있다”면서 “이해관계 차이가 크지 않거나 교섭 요구 안건이 동일한 경우 일방의 요구만 반영해 교섭단위를 분리하면 교섭 혼란과 갈등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포스코가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조업을 지원하는 협력사 직원 7000여 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하면서 회사 내부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정규직 직원들이 채용 과정의 난도 차이와 직무 성격 등을 이유로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갈등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포스코 노조는 사측의 협력사 직원 직고용 발표를 두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협력사 직원으로 이뤄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와 포항지회는 “그간 협력사 근로자 지위를 위해 투쟁해 온 노조를 배제한 결정”이라면서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불법 파견 문제를 축소·왜곡하려는 기만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포스코 직원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금속노련 포스코 노조는 “공감대 형성이란 절차를 무시한 일 처리”라고 비판했다.

고용 대상인 협력사 직원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별도 직군으로 분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포스코는 2022년 사내 하청 직원 50여 명을 정직원으로 전환하면서 별도 직군으로 분류해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이 경우 임금이나 복지에서 불평등 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포스코 관계자는 “직접 고용에 따른 여러 쟁점을 협의하는 단계”라며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선 기자 leesun@hankooki.com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