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ICT(정보통신기술)뿐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에 큰 영향을 줬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AI 대전환에 기업들이 어떤 포지션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생존 여부가 결정될 수준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AI 대전환기에 대응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국내 4대 그룹을 중심으로 AI 대전환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어떤 결과를 거뒀고, 앞으로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최태원 SK 회장. (사진=SK그룹)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AI 호황기가 왔을 때 가장 먼저 물길에 올라탄 기업은 SK하이닉스다. 2013년 세계 최초 1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개발하며 시장을 개척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망을 확보하며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타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룹 전사적 AI 전환을 선언했다. 올해 초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에서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타고 글로벌 시장의 거친 파도를 거침없이 헤쳐 나가자"라며 '승풍파랑'(乘風破浪)의 도전을 강조했다.
이는 SK그룹이 최근 몇 년 간 진행하고 있는 '리밸런싱'과 맞아 떨어지며 AI 중심의 체질 개선에 속도를 높였다. '리밸런싱'과 고강도 AI 전환이 맞아 떨어지면서 SK그룹은 대한민국에서 AI에 가장 진심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만 그룹의 기존 미래 사업 축이었던 에너지, 바이오 사업과 시너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HBM4. (사진=SK하이닉스)
◇ AI 최전방에 선 SK하이닉스···배터리·건설 측면지원 =
SK하이닉스는 그룹 전체 AI 전환의 최전방에 서있다. 지난해 3월 SK하이닉스는 CMOS 이미지센서 사업에서 철수하고 메모리 반도체에 전사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만큼 AI 전환기의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역량을 모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같은 의지는 연말 임원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임원인사를 통해 글로벌 거점에 'AI 리서치 센터'와 인프라 조직을 신설했다.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빅테크 고객사의 AI 전환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회사의 비전이었던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에서 진화한 '풀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를 올해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곽노정 사장은 지난해 11월 'SK AI 서밋'에서 "앞으로는 고객이 가진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생태계와 활발히 협업해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겠다"라며 새 비전에 대해 소개했다.
이 같은 AI 리더십 확보에 SK온과 SK에코플랜트도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SK온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LFP(리튬인산철) 기반 ESS(에너지저장장치)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SK온은 지난해 SK엔무브와 합병하고 SK엔무브의 액침냉각 플루이드 기술을 적용한 액침냉각 팩을 내세우고 있다. 액침냉각은 데이터 서버를 절연유에 직접 담가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SK엔무브가 미국 액침냉각 전문기업 GRC와 협업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의 SMR(소형모듈원전) 전문 기업인 테라파워,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협력해 SMR 사업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이들 3사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미국 와이오밍주에 세계 최초 상업용 SMR 플랜트 건설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SK에코플랜트는 기존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을 앞세워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하는 'AI 인프라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 속 아파트 시장 대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SK에코플랜트는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협업해 울산에 짓는 AI 데이터센터의 시공사로 나선다. 해당 데이터센터는 총 공사비 7조원 규모로 내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가동을 시작해 2029년 103MW 규모로 완공될 예정이다.
정재헌 SKT CEO가 1일(현지시간) MWC 2026이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SKT)
◇ SK ICT 계열사도 AI 역량 집중 =
SK그룹의 핵심 AI 사업 중 하나인 울산 데이터센터는 완공되면 SK텔레콤이 운용사로 나서게 된다. SK텔레콤은 무선통신 시장 포화에 따라 AI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하고 '에이닷' 출시와 함께 AI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는 회사를 MNO(통신)과 AI로 나누고 양대 CIC(사내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AI 사업에 통신사업과 대등한 수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AX는 우리 일상을 더 가치있고 행복하게 할 필수 조건으로, 누구나 AI로 값진 성과를 만들고 회사의 성장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자"라고 밝혔다.
SK그룹의 SI(시스템통합) 계열사였던 SK㈜ C&C는 지난해 6월 SK AX로 사명을 변경했다. AI 전환을 뜻하는 'AX'를 회사명에 반영함으로써 고객사의 AI 전환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반영했다.
윤풍영 SK AX 사장은 당시 사명 변경에 대해 "SK AX 스스로가 국내 최고의 AI 혁신 기업으로 재탄생 하겠다는 선언"이라며 "SK AX가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AI와 최신 기술로 해결하고, 본질적인 비즈니스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는 AI 혁신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명 변경 이후 SK AX는 새로운 통합 브랜드인 'AXgenticWire'(엑스젠틱와이어)를 공개하고 에이전틱 AI 기반 기업 운영 혁신을 가속화한다. SK AX는 "각 AI 에이전트 별 부분 최적화가 아닌 기업 운영 전반의 최적화를 가능케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엑스젠틱와이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라며 "기업들은 운영 체계를 통해 비용 절감과 품질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 보안 및 거버넌스 관리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투자 지주회사인 SK스퀘어도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환했다. 이에 따라 SK스퀘어는 미국과 일본 등의 AI·반도체 기술기업 7곳에 총 300억원을 투자했다. 가장 최근에는 해외 투자법인인 TCG스퀘어를 통해 지난 2월 미국 해머스페이스에 투자를 집행했다. SK스퀘어는 관련 유망기업을 발굴해 앞으로 1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 최태원 "AI 올인" 속 에너지·바이오는 소외? =
최태원 회장은 2024년 6월 미국 출장 중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화상으로 참여했다. 당시 최 회장은 경영진들에게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룹 전체의 사업 역량을 AI에 모으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이중 82조원은 HBM을 포함한 AI 관련 사업에 투자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역시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 간 3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처럼 그룹 전체의 역량이 AI와 반도체에 집중되는 사이 사업영역의 또 다른 핵심축인 에너지와 바이오는 다소 소외된 분위기다. SK그룹의 에너지 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와 SMR 등 AI 인프라 주요 시장에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핵심 사업인 정유와 석유화학은 중동 전쟁 등 글로벌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SMR과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을 포함해 '그린에너지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일부 사업을 제외하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이 울산에 지으려던 폐플라스틱 재활용 단지 역시 공사가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 사업은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고객사 확보와 투자를 지속하고 있으나 아직 그룹의 주력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분위기다. SK그룹 역시 1993년부터 30년 넘게 투자를 지속한 만큼 긴 시간을 갖고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장녀인 최윤정씨를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임명하면서 차세대 핵심사업의 입지를 굳혔다.
AI와 반도체에 역량이 집중된 만큼 그린에너지와 바이오에서는 공격적인 투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그룹 차원에서 AX(AI 전환)을 내세운 만큼 이들 사업 역시 AI를 적용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의 AI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에는 SK바이오팜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선정돼 신약개발과 질환 예측 등에 AI를 도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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