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옛 충북도청 건물에 자리 잡은 ‘그림책정원1937’은 팝업북 스페이스를 마련해 입체적인 종이 예술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백창화 제공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괜스레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진동하는 휴대폰. 급한 전화인 줄 알고 받아 보면 정중하게 “여보세요”하는 기계음이 나오기 일쑤니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는 편이 낫다. 정작 내가 누구에게 왜 투표해야 하는지 정보는 부실하고 이름들만 난무하는 현실. 후보로 나선 이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을 읽다 보면 그 이름들마저 변별력을 상실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속한 업과 관련된 진전된 공약이 있을까 싶어 한번씩 도서관, 서점, 출판, 독서 문화 키워드를 검색해보곤 한다. 첨단기업 유치, 인프라 확장, 인공지능(AI) 활용, 케이(K)-콘텐츠 등 화려한 용어들 앞으로도 뒤로도 보고 싶은 내용은 찾기 힘들다. 내가 몰락해가는 사양 산업 종사자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렇듯 그닥 즐겁지 않은 선거의 계절에도 작은 기쁨 하나가 있으니 오는 31일, 충북도청 본관이 ‘그림책정원1937’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도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준공된 충북도청이 80년 만에 온전히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림책을 기반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인데 이름에 ‘정원’을 넣은 것은 아마도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길 희망한 것일 테다.
오는 31일 충북 청주시 ‘그림책정원1937’ 개관 기념으로 팝업북 작가 엘레나 셀레나 특별전이 열린다. 백창화 제공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식과 성공을 위한 독서를 강요받아 왔다. 오프라 윈프리는 ‘독서는 우리가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라고 했다. 그를 비롯해 소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삶에서 우리 사회가 배운 독서의 힘이란 대개 이런 성공 신화로 이어져 왔다. 바로 그 점이 자라나는 많은 세대로부터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았다.
나는 충북도청에 새로 만들어진 ‘그림책정원1937’이 이런 독서의 힘을 강조하는 공간이 아니길 바랐다.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삶을 관조하고 사색하며 영혼의 산책을 돕는 곳이었으면 했다. 어린아이들에겐 유쾌함과 즐거움을 주고, 청년에겐 경이로움을, 장노년에겐 마음의 안정을 주는 그런 곳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일하고 사랑하고, 고통에 맞서 싸우다가 죽는다”(폴 투르니에 ‘노년의 의미’)
이렇게 처연한 우리들의 삶에 푸른 식물 같은 시간, 화사한 꽃 같은 순간을 선물해주는 그런 공간이 일상 가까운 곳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은 많지만 결국 공간을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은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몫일 테고 이곳에 작은 소망을 심은 나의 몫일 테다.
충북도에 새로운 책 공간이 개관하는 지금, 전남 순천시에선 새로운 서점 하나가 문을 열었다. 온전히 관의 힘과 세금으로 만들어진 충북도와 달리 순천의 이 서점은 관과 민이 협력해 만든 공간이다. 순천시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도 젊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전남 제1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아동을 위한 어린이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이 최초로 문을 연 곳이며 그림책을 중심으로 한 독서 콘텐츠와 도서관 문화가 풍성한 곳이다. 여기 활력을 더하기 위해 원도심 한복판에 ‘남해의봄날’ 출판사와 지역 서점들이 협업하여 새 서점을 연 것이다. 쇠락한 건물을 재단장해 탄생한 서점 ‘나무들의 밤’에 요정들이 모여들어 빛을 밝히고 불빛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어 와글와글 도란도란 이야기가 피어나면 좋겠다.
민관 협력으로 전남 순천시에 문을 연 서점 ‘나무들의 밤’. 남해의봄날 제공
선거의 계절엔 늘 거대한 담론들이 유령처럼 거리를 떠돈다. 맨 앞자리에는 경제가 있고, 개발과 토건이 뒤를 따른다. 그러나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아도, 굳이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더라도 행복과 안녕은 가능하다고, 그러니 천천히 산책하듯 책의 정원으로 와 보시라 권하고 싶다. 청주시도 순천시도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고 있다. 이곳에 읽고 거닐며 삶을 관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