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일본 '2030 그린패권' 야심찬 행보...한국은 무얼 망설이나

2030년을 향한 각축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단순한 환경 성과를 넘어, 산업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시점이 될 것이다. [곽재원 ESG경제 칼럼니스트] 곽재원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교수

일본 '2030 그린패권' 야심찬 행보...한국은 무얼 망설이나

일본 도쿄 중앙은행 앞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이 탈탄소 산업 경쟁력 장악을 위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1일부터 탄소배출권거래제(GX-ETS)를 본격 시행하며 산업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2023~2025년 자율참여 단계였던 GX-ETS를 끝내고, 올해부터는 연간 직접 배출량 10만 톤 이상인 300~400개 대기업에 참여를 의무화해, 일본 온실가스 배출의 약 60%를 한 번에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제도는 기업별로 배출 한도를 부여하고 초과·절감분을 거래하게 하되, 단순 규제가 아니라 설비투자와 기술 혁신을 유도하는 ‘성장지향형 탄소가격제’로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10년간 150조 엔 이상의 관·민 GX 투자와 GX 경제이행채 발행을 결합해, 재생에너지·원전·수소·해상풍력·그린소재를 한 축으로 묶는 국가 전략으로 ‘2030년 그린 패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식의 차이다. 일본은 탈탄소를 비용이나 규제가 아니라 제품·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수단, 새로운 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재, 자동차, 부품, 그리고 공급망 전체를 하나로 묶어 ‘그린화’를 산업 전략의 중심에 놓고, 에너지 안보·통상·금융까지 아우르는 장기 GX 로드맵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도와 방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본 미디어와 정책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향후 5년이 승부를 가른다”, “2030년은 그린 패권을 결정하는 분수령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냉정한 산업 전략의 언어다.

탈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시장 진입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 역시 제조 강국이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경쟁 환경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가격, 품질, 납기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이제 시장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제품은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경쟁력은 무너진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이미 시행 단계에 들어섰고, 적용 대상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는 철강, 알루미늄 등 일부 산업에 국한됐지만, 향후 수백 개 품목으로 확장될 것이 명확하다.

이 제도의 본질은 간단하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는 추가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즉, 탄소는 더 이상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수출 경쟁력을 직접 좌우하는 외부 변수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국 산업 보호와 기후 정책을 결합한 새로운 규제 체계를 준비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탄소 배출 관리를 시작했다. 애플, 글로벌 자동차 OEM, 유럽 대형 제조기업들은 협력사들에게 탄소 데이터 제출과 감축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납품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발생한다. 탄소는 더 이상 ‘환경 비용’이 아니다. 탄소는 ‘시장 진입권’이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 얼마나 친환경적인 공정을 거쳤는지까지 증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쟁의 기준이 제품에서 생산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왜 2030년이 ‘그린 패권’의 분수령인가

이 변화가 왜 2030년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첫째,

글로벌 규제가 실제 비용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시점

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선언과 준비의 단계였다면, 2026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과금이 시작되고, 2030년 전후에는 제도가 완전히 정착된다. 이 시점에는 더 이상 대응을 미루거나 유예할 수 없다. 대응하지 못하면 비용을 지불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는 선택만 남는다.

둘째,

산업 투자 사이클 때문

이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은 설비 투자에서 실제 가동까지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지금 투자를 결정하지 않으면, 2030년에는 경쟁력을 갖춘 설비를 갖출 수 없다. 반대로 지금 과감하게 전환 투자에 나선 기업과 국가는 그 시점에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셋째,

공급망 재편이 완료되는 시점

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스코프 3, 즉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협력 요청이 아니라, 계약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저탄소 공급망에 편입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다.

넷째,

금융 시장의 기준이 바뀌기 때문

이다. ESG 투자는 이미 주류가 되었고, 앞으로는 탄소 배출이 기업 가치 평가에 직접 반영된다. 탄소 리스크가 높은 기업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고, 투자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는 곧 자금 조달 능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게 된다.

다섯째,

기술 경쟁의 표준이 결정되는 시점

이다. 전기차, 배터리, 수소, 탄소포집기술(CCUS), 친환경 소재 등은 지금 치열한 경쟁 단계에 있다. 그러나 2030년 전후가 되면 누가 기술 표준을 장악했는지가 결정된다. 표준을 선점한 쪽은 시장을 지배하고, 그렇지 못한 쪽은 그 규칙을 따라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 모든 요소가 한 시점에 수렴하는 순간, 그 시점이 바로 2030년이다. 그래서 2030년은 단순한 환경 목표의 연도가 아니라,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탈탄소 녹색 문명 대전환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여전히 ‘규제 대응’에 머물러 있는가

이제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한국은 이 전환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규제 대응’ 수준에 머물러 있다. ESG는 보고서의 항목으로 소비되고, 탄소는 비용으로만 인식된다. 공급망 차원의 전략은 부족하고, 정부와 기업 간의 긴장감 있는 협력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 변화를 산업 경쟁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에너지 정책은 어느 한 주체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 설계와 기업의 투자, 그리고 공급망 전체의 실행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한 접근이 아니라, 정치와 산업을 동시에 움직이는 투트랙 전략이다.

먼저

정치권은 분명히 인식

해야 한다. 탄소 정책은 환경 정책이 아니라 통상과 산업 안보의 문제다. 이를 미루는 것은 규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이 만든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이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그 비용은 다음 정부가 아니라 국가 산업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정치의 역할은 규제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전환할 수 있는 명확한 방향과 일관된 정책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탄소 가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산업별 전환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탈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시장 진입권이다. 앞으로의 경쟁은 품질이 아니라 탄소 배출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탄소 대응이 늦은 기업은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거래 자체에서 배제된다. 이미 글로벌 시장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업은 ESG를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개별 기업을 넘어 공급망 전체의 경쟁력을 설계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와 기업 중 누가 더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이 둘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하는 구조다. 탄소는 더 이상 환경의 언어가 아니다. 탄소는 산업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를 누가 정의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시장 지도가 바뀐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제조 경쟁력에 기대어 버틸 것인가, 아니면 그린 경쟁력을 통해 새로운 산업 질서를 주도할 것인가. 시간은 많지 않다. 2030년을 향한 각축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단순한 환경 성과를 넘어, 산업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시점이 될 것이다.

[곽재원 ESG경제 칼럼니스트]

곽재원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