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변호사(김태형법률사무소)
고전 〈터미네이터 2〉(1991)의 서사는 통제 불가능한 AI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AI ‘스카이넷’은 인간을 지구에 해로운 존재로 규정하고 멸종시키려 하며, 인류 저항군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살인 병기를 과거로 보낸다. AI가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종의 절멸을 꾀한다는 이 영화적 상상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늘하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 상상이 이제 스크린을 뚫고 나와 일상을 파고드는 실체적인 두려움이 됐다는 사실이다.
2022년 ChatGPT(GPT-3.5)의 등장은 단 몇 년 만에 세상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AI는 이미 채용, 배치, 평가, 해고에 이르는 고용의 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의사결정 도구로 자리 잡았다. 과거 기계가 인간의 근력을 대체하는 데 100년이 걸렸다면, 지금의 변화는 그와 비교조차 불가능할 만큼 빠르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노동을 넘어 사무직과 전문직 영역까지 이미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수습 회계사들의 시위는 그 상징적인 전조였다. AI에 밀려 실무수습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 예비 전문가들의 외침은, 변화의 파고가 이미 우리 턱밑까지 차올랐음을 보여준다.
AI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일자리의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일각에서는 AI로 인한 신규고용 창출이 이를 상쇄하고 남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벌어질 불평등의 심화는 피하기 어렵다.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받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간극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가능한 노동자로 전락한 개인에게 이는 단순한 생계 문제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의마저 흔들리는 실존적 위기가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경사노위가 발간한 ‘인공지능과 노동 2025’ 녹서는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12가지 질문'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전문가 100여명의 시선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사회의 수용과 대응 능력'을 향하고 있다. 기술의 파급력은 결정론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철학은 '인간 중심적 AI'라는 원칙으로 집약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반의 효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통제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구감소 시대의 노동력 공백을 AI로 메우거나, AI로 대체 가능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자체를 억지로 막지는 못한다 해도, 남은 일자리의 질과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정책적 안전망을 병행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서는 한발 더 나아가 'AI 이익 공유'라는 구체적인 논의를 소개한다. AI로 향상된 생산성과 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AI 산업'의 본질에 기초한 논의이기도 하다. 거대언어모델(LLM)과 딥러닝은 수많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 자원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고, 이를 가능하게 한 인터넷 역시 공공의 토대 위에서 구축된 것이다. 챗GPT를 만든 OpenAI가 비영리 재단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나, Claude의 개발사인 Anthropic이 기업 이윤을 감시하는 독립적인 신탁 기관을 두고 '인류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은, AI 이익의 공공재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익 공유는 일차적인 경제적 분배를 넘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과 여가의 재구성'이나 '일자리 나누기'의 형태로도 실현될 수 있다.
녹서는 약 40쪽의 간결한 분량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향하도록 조종간을 꼭 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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