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정의는 과거의 공로와 피해를 후손에게 무한히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부정의를 올바르게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정의를 더 잘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은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만든다
2026년 8월, 전북특별자치도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 723명에게 1인당 연 120만원의 유족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찬반 논란이 일었다. 논란의 한쪽에는 “131년 만의 명예회복”이라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언뜻 이 문제는 행정적·재정적 사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는가”라는 근본 물음을 건드린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깨어있음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면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하나는 과거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과거를 생산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물론 좋다. 그렇지만 특정한 방향으로 기억하라고 강제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폐쇄적 역사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명예회복의 방식과 관련이 있다. 130년 전 조선 말기에 일어난 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현금성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여기에는 물질적 보상만이 명예회복의 실질적 수단이라는 천박한 정의론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후기의 부패한 지방 권력과 신분적 질서에 저항해 사회개혁을 요구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따라서 한때 ‘동학란’이나 ‘농민반란’으로 폄하됐던 이 사건을 ‘동학농민혁명’으로 재평가하고, 참여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학계와 사회도 이 점을 상당히 폭넓게 인정해 오랫동안 ‘동비’(東匪), 곧 ‘동학 비적’으로 폄훼되던 참여자들을 반란자가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재평가한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 정의의 회복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평가가 130여년이 지난 오늘날 참여자의 후손에게 현금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는 해석의 내용이 아니라, 국가가 하나의 해석에 법적·재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에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과 조례를 통해 참여자를 공식적으로 ‘명예회복 대상’으로 등록하고 그 후손에게 예산을 지급하는 순간, 특정 역사 해석은 학문적 견해에서 벗어나 국가가 인증한 ‘공식 서사’로 제도화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위험이 따른다. 역사 해석은 본질적으로 계속 갱신되는 열린 대화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만석보 수세 강제 징수와 가혹한 수탈에 분노한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습격해 파괴하고 억울하게 빼앗긴 쌀을 농민들에게 돌려준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예산과 자격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매개로 특정 해석을 고정하면, 그 해석은 재검토가 어려워진다. 명예와 돈이 결부된 서사는 학문적 반론조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쉬워, 오히려 건강한 역사 논쟁을 위축시킬 수 있다.
건강한 역사 논쟁 위축시킬 우려
익산시가 지적한 형평성 문제가 이 지점을 정확히 드러낸다. 임진왜란 피해자, 홍경래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처럼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거나 희생된 집단은 역사에 무수히 많다. 국가가 그 가운데 유독 동학만을 골라 후손 보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왜 이 사건인가’라는 선택의 기준이 문제가 된다. 그 기준이 역사적 정합성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이나 정치적 상징성에 좌우될 때, 역사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자원으로 도구화될 위험이 있다. 물론 공동체는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으면 어느 지점에서 “이것은 정의로운 저항이었다”고 공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 핵심 쟁점은 국가가 역사를 평가해도 되는가가 아니라, 그 평가를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역사적 해석의 개방성을 해치지 않는가이다.
‘명예회복’과 ‘금전 지급’은 결이 다른 두 행위다. 명예회복은 상징적·공적 성격을 지닌다면, 수당은 사적·물질적 성격을 띤다. 이 둘을 결합할 때 생기는 긴장이 이 논란의 핵심이다. 국가가 과거에 ‘동학란’이라고 불렀던 사건을 ‘동학농민혁명’으로 재평가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역사적으로 정당했다”는 명제로부터 “참여자의 후손에게 2026년 현재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명제가 자동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명예회복은 역사적 평가의 문제이고, 금전 지급은 분배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적 평가를 바로잡는 일이고, 후자는 현재 시민들이 낸 세금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보상의 도덕적 근거다. 회복적 정의나 배상의 원리는 ‘피해를 본 당사자를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급 대상은 132년 전 참여자의 자녀·손자녀·증손자녀다. 이들은 그 사건으로 직접 고통받은 당사자가 아니며, 세대가 멀어질수록 ‘누구의 어떤 피해를 무엇으로 회복하는가’라는 인과의 고리가 흐려진다. 과거의 국가폭력이나 부당한 처벌에 대해 보상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국가의 불법행위로 재산을 빼앗겼고 그 재산상의 손실이 자녀에게 직접 승계됐다면 후손에게 보상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100년, 200년을 넘어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과 현재 사이에는 132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도 바뀌었다. 5·18이나 제주4·3처럼 피해 당사자나 직계 가족이 생존해 있는 근현대 국가폭력 사안과는 시간적·도덕적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 지급은 ‘피해회복’이라기보다 ‘역사적 공로에 대한 예우’에 가까워지는데, 그렇다면 그 예우의 대상이 왜 하필 후손 개인이어야 하는지가 다시 문제된다.
문제는 명예회복의 진정한 형식
둘째, 유족수당을 지급하면 명예의 사유화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동학농민혁명의 명예는 특정 가문의 사적 자산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계승하는 공적 기억이다. 그런데 그 기억을 ‘등록된 후손’에게 현금으로 배분하는 순간, 공적 명예는 사적 수혜로 전환되고 ‘자격 있는 후손’과 ‘없는 사람’이 갈리는 경계가 생긴다. 익산시가 우려한 후손 확인의 현실적 어려움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공적 기억을 개인 단위로 쪼개려 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오히려 명예의 물질화가 그 명예를 고양하기보다 거래 가능한 것으로 격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셋째, 역사적 부정의가 언제까지 현재의 보상청구권을 발생시키는가 하는 확장의 문제다. 후손 보상을 명예회복의 표준적 방식으로 삼으면, 앞서 언급한 다른 역사적 저항·희생 집단의 후손들도 동일한 요구를 할 논리적 근거를 얻는다. 역사적 정의에는 시간적 한계의 문제가 있다. 만약 피해자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으로 보상청구권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원칙에는 종료 지점이 없다. 이는 재정의 문제를 넘어, 역사적 예우의 기준이 무한히 확장되며 결국 그 의미가 희석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논점은 동학농민혁명에 특히 중요하다. 1894년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132년 동안 여러 세대가 교체됐고 한국의 국가체제와 재산 관계, 시민권 질서도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조상이 국가권력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증손자에게까지 경제적 보상청구권이 당연히 승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문제는 “명예회복의 진정한 형식은 무엇인가?”이다. 역사적 정의는 과거의 공로와 피해를 후손에게 무한히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부정의를 올바르게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정의를 더 잘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만든다. 동학혁명 농민군이 탐관오리의 횡포와 신분적 차별을 없애고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면, 그들을 가장 제대로 기리는 방법은 후손에게 새로운 세습적 권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요구했던 정의를 오늘의 시민 모두에게 실현하는 것일 게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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