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 이미지
국내 산업계에서 '간판은 제조업인데 수익 모델은 자산운용사'인 기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본업이 업황 부진으로 신음하는 사이, 공격적인 주식 투자가 실적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서다. 특히 서희건설과 KCC 등은 단순한 여유 자금 운용을 넘어 전문 투자기관 못지않은 포트폴리오로 주목받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업계 등에 따르면, 중견 건설사인 서희건설은 지난해 본업에서의 수익성 악화를 주식 투자 수익으로 상당 부분 방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말 기준 서희건설이 보유한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1590억5438만원에 달한다. 이는 1년 전인 2024년 말(899억원)과 비교해 67.9% 급증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이 기간 서희건설의 본업 실적이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444억원으로 전년(2357억원) 대비 약 913억원(38.8%)이나 급감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건설업계의 악재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식 평가액이 7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실적 하락폭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서희건설의 포트폴리오는 여느 '서학개미' 못지않게 공격적이다. 단일 종목으로 가장 비중이 큰 테슬라(302억원)를 비롯해 삼성전자(278억6000만원), 팔란티어 테크(242억3000만원) 등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중심의 성장주에 집중했다. 특히 지난해 AI 대장주 중 하나인 팔란티어에서만 138억원 이상의 이익을 거두는 등 탁월한 선구안을 보였다는 평가다.
주식 투자로 업계를 호령하는 원조 '투자 명가'로는 KCC가 꼽힌다. KCC는 정몽진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수십 년 전부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지분을 전략적으로 매입해 왔다.
KCC는 10여 년 전부터 삼성물산,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한국조선해양(현 HD한국조선해양) 등 굴지의 대기업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특히 과거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지분 투자는 KCC의 신의 한 수로 불린다.
KCC 역시 서희건설과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 건설 경기 악화로 KCC의 핵심 사업부문인 건자재와 실리콘 등의 수익성이 재작년 대비 다소 둔화되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꾸준히 늘려온 핵심 대기업 지분의 평가액과 배당금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했다. 본업인 제조업의 이익 폭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투자를 통해 구축한 거대한 자산 가치가 실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 셈이다.
실제로 KCC가 보유한 상장 주식의 가치는 때때로 KCC 자체의 시가총액과 맞먹거나 이를 상회할 정도로 막강하다. 이는 단순한 시세 차익을 넘어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경영권 방어, 그리고 유동성 확보라는 다각도의 포석이 깔린 결과다.
이처럼 기업들이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본업의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만으로는 주주들이 원하는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특히 사이클 산업인 건설·석유화학 기업들에게 주식 투자는 경기 하강 국면을 견디게 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업 본연의 가치는 결국 본업의 경쟁력에서 나와야 하는데, 자산 운용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시장 변동성에 노출될 위험이 커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유망 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은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주식 시장이 하락장으로 돌아서면 본업의 부진과 투자 손실이 겹치는 '더블 악재'가 될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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