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형평법원에서 지난 16일 내려진 크래프톤과 언노운 월즈(Unknown Worlds) 전 경영진 간의 1심 판결에 'AI'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자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을 넘어, 글로벌 게임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사내 임원의 합리적인 법적 리스크 경고를 배척하고 인공지능(AI) 챗봇의 조언을 따르다 맞이한 패소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언노운 월즈의 차기작 '서브노티카 2'의 순조로운 개발 진척 상황이었다. 2025년 5월 크래프톤 재무팀의 분석에 따르면, 서브노티카 2가 계획대로 8월에 얼리 액세스로 출시될 경우 인수 당시 약속했던 최대 2억 5,000만 달러(약 3,600억 원)의 어닝아웃(Earnout)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 거래를 자신이 주도했으며, 막대한 어닝아웃을 지급하는 것이 회사의 장부 가치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 우려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호구(pushover)'로 취급받는 것에 분노하며 경영진의 배임 소지까지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래프톤 기업개발부문장이자 언노운 월즈 이사회 멤버였던 박혜리(Maria Park) 부문장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조언을 건넸다.
박 부문장은 "현재 서브노티카 2 빌드의 상태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무리한 출시 연기 압박이 잠재적 소송에서 논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언노운 월즈의 창업자가 태만했던 것은 사실이나, "모회사를 고의로 기만할 정도로 형편없이 경영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녀는 사내 메신저를 통해 김 대표에게 직언했다. "정당한 사유로 해고하더라도 판매 목표가 달성되면 어닝아웃은 여전히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 해고로는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없으며, 소송 및 평판 리스크에 노출될까 우려된다"고 명확히 경고했다.
인간 임원의 합리적인 경고는 김 대표가 원하던 답(어닝아웃 회피)이 아니었다.
▲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
결국 김 대표는 챗GPT에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챗봇마저도 초기에는 "어닝아웃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답했으나, 김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노딜 시나리오 대응 전략(Response Strategy to a 'No-Deal' Scenario)'을 구상해 다른 임원들과 공유했다.
챗GPT가 제시한 이른바 '압박과 레버리지 패키지'는 매우 공격적이었고, 크래프톤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 이 전략은 선제적 프레이밍, 통제권 확보, 체계적 자료 준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선제적 프레이밍(Preemptive Framing). 대기업 대 인디 스튜디오의 구도를 깨고 팬들의 신뢰를 명분으로 내세우라는 AI의 조언에 따라, 크래프톤은 언노운 월즈 홈페이지에 "창업자들을 다시 초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기만적인 허위 공지사항을 올렸다.
다음으로 통제권 확보(Securing Control Points). 스팀 및 콘솔 퍼블리싱 권한과 코드 접근을 차단하라는 AI의 지시에 따라, 크래프톤은 언노운 월즈의 스팀 퍼블리싱 플랫폼 접근을 끊어버려 서브노티카 2의 출시를 물리적으로 막았다.
AI의 지침대로, 크래프톤 법무팀은 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업자들의 과거 영화 제작 관련 행보와 소셜 미디어 게시물 등을 '사후 증거'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후 궁지에 몰린 언노운 월즈 전 경영진이 회사의 방어를 위해 데이터를 대량 다운로드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크래프톤은 이를 빌미로 7월 1일 전격적인 해고를 통보했다.
▲ 관련 판결문 이미지
재판을 맡은 델라웨어 형평법원의 로리 윌(Lori W. Will) 부법관은 크래프톤의 수를 꿰뚫어 보았다.
법원은 크래프톤이 내세운 창업자들의 은퇴 은폐나 데이터 탈취 주장은 모두 본질을 흐리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창업자들의 역할 변경은 이미 크래프톤에 투명하게 보고되어 승인된 사항이었으며, 데이터 다운로드 역시 탈취 목적이 아닌 크래프톤의 적대적 행동에 대응한 방어적 조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크래프톤의 해고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계약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사태는 AI가 짜준 '기업 탈취 시나리오'가 복잡한 계약 관계와 신의성실의 원칙이 교차하는 실제 법정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인간 임원이 정확히 짚어냈던 '소송과 평판 리스크'는 현실이 되었고, 크래프톤은 거액의 어닝아웃 부담을 털어내지 못했으며, 경영권을 고스란히 돌려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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