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5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성지로 2030에게 떠오르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10일 오후 5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2000년대 초반 동네 골목에서 초등학생들이 흔히 타던 인라인 스케이트가 다시 등장했다. 2030은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어기적거리면서 걷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능숙하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레트로 아이템'인 인라인스케이트가 20여 년 만에 2030 사이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인라인스케이트뿐만이 아니다. 최근 숫자 퍼즐 게임인 스도쿠도 2030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AI)이 대신해줄 수 없는 '직접 하는 재미'가 새로운 여가 방식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놀이를 새롭게 즐기는 Z세대까지 가세하면서 아날로그 활동이 2030의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오히려 손과 몸을 직접 움직이는 활동이 새로운 재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핫걸은 스도쿠를 한다"…인라인 이어 스도쿠까지 '각광'
지난 10일 오후 5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성지로 2030에게 떠오르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12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지난 3월 전국 만19~59세 성인 남녀를 1000명을 대상으로 '아날로그 감수성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69.9%)은 디지털 기기 사용이 많아질수록 아날로그 활동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AI 기술이 발달할수록 아날로그적인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응답도 64.3%에 달했다.
반대로 AI는 빠르게 일상에 들어오고 있었다. 챗GPT 등 대화형 AI를 매일 사용한다는 응답은 36.9%로 나타났다. AI 애플리케이션(앱)은 국내 모바일 앱 시장에서 인스타그램을 제치고 신규 설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상반기 누적 신규 설치 1위 앱은 오픈AI의 챗GPT로 534만건이 설치됐다. 인스타그램은 505만건으로 5.7% 차이 났다. 디지털 기술이 생활 곳곳에 자리 잡을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손으로 직접 하는 경험'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2030은 모니터 안의 수동적인 경험 대신 '진짜 경험'을 찾기 시작했다. 인라인스케이트가 대표적이다. 여의도공원의 인라인스케이트 대여소는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2030이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대여소 운영자인 60대 A씨는 "원래는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았는데 요새는 2030 친구들이 오더라"라며 "이런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5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성지로 2030에게 떠오르고 있다. /영상=박수빈 기자
인라인스케이트가 2030 사이에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역설적으로 SNS 영향이 크다. SNS에서 인라인을 타는 영상·사진을 접한 사람들이 직접 해보러 나오고, 다시 게시물을 올리면서 콘텐츠가 재생산되고 있다. 관련 게시물 조회수는 78만~100만회를 넘기도 한다. 1시간에 대여료 4000원으로 비싼 장비나 별도의 준비 없이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잼컨(재밌는 콘텐츠)로 입소문을 탄 것이다.
대학생 A씨는 "인스타 보고 왔다. 어렸을 때 타본 적은 없지만 뒤뚱거리면서 인라인을 타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남자친구랑 오고 싶었다"며 "인라인은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끔 봤는데 직접 타보니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동시에 핸드폰 사용과 잠시 거리를 두기 위해 아날로그 활동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엑스(X·구 트위터)에는 직접 푼 스도쿠를 인증하거나 추천 책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잇따르는 중이다. 해외에서는 '핫걸은 스도쿠를 한다(hot girl do sudoku)' 문구가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중교통 이동 등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종이 위 숫자를 하나씩 채워가는 모습 자체가 '힙한 취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경험적 레트로' 시장 커질 전망…"SNS 확산력 핵심"
SNS에서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취미로 스도쿠가 떠오르고 있다. 외국에서는 '핫걸은 스도쿠를 한다'는 밈이 통용될 만큼 스도쿠가 힙한 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X·틱톡 갈무리
아날로그 활동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까지 새로운 취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트렌드모니터의 아날로그 감수성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오래된 방식이나 제품이 오히려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응답이 60.4%로 집계됐다. 특히 응답자 중 20대는 68%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아날로그 활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서도 오래된 방식과 제품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AI 시대에서 아날로그 활동이 각광받는 것은 문화적 반동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화적 반동 현상은 항상 있었다. 그 시대에 지배하는 문화와 거기에 반대하는 문화들이 경쟁을 통해 그다음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문화 변동의 과정이고, 2030세대가 아날로그 활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새로운 문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날로그의 확산을 디지털과의 단절로 볼 필요는 없다. SNS에서 새로운 아날로그 취미를 발견하고, 직접 경험한 뒤 다시 SNS에 공유하는 식으로 두 영역이 맞물리고 있어서다. 여의도공원 인라인스케이트가 유행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SNS는 2030 입장에서 경험적 레트로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라며 "디지털로 아날로그 경험을 공유하는 소비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경험적 레트로' 시장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넘어, 인라인스케이트 등 직접 몸과 감각을 사용해야 하는 콘텐츠가 2030 사이에서 주목받으면서 시장 범주가 넓어질 수 있어서다. 이 교수는 "인라인스케이트 자체가 대규모로 부활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아날로그 시장 자체는 커질 확률이 높다"며 "LP, 뜨개질, 보드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아날로그 시장 범주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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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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