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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규식 칼럼-길을 걷다] '가짜'가 '진짜' 같아진 세상

솔거가 그렸다는 황룡사 벽화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를 타고 내려온다. 벽에 그린 나무 그림이 너무 진짜 같아 새들이 날아가 쉬려다 부딪힌 이야기는 유명하다. 색상이 바랬는데도 새들이 계속 부딪혔고 어느 날 어떤 승려가 다시 색을 칠한 다음부터는 새들이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규식 칼럼-길을 걷다] '가짜'가 '진짜' 같아진 세상

▲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시(市) 아파트 벽면 '트롱프 뢰유'. 가운데 그림이 이 고장 출신 에스페란토 창제자 자멘호프. 사진=이규식

솔거가 그렸다는 황룡사 벽화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를 타고 내려온다. 벽에 그린 나무 그림이 너무 진짜 같아 새들이 날아가 쉬려다 부딪힌 이야기는 유명하다. 색상이 바랬는데도 새들이 계속 부딪혔고 어느 날 어떤 승려가 다시 색을 칠한 다음부터는 새들이 찾지 않았다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았다는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일화도 회자된다. 라이벌 두 화가는 그림 경쟁을 벌였는데 자신이 그린 포도 그림에 새가 날아와 쪼아먹으려 했다 하여 의기양양해진 제욱시스는 그림을 보여달라며 파라시우스에게 갔다. 커튼으로 그림을 반쯤 가려놓아 젖히려 했더니 커튼마저 그림이어서 패배를 인정했다는 이야기로 두 경우 모두 새들이 등장한다. 요즘도 나무가 반사된 유리창에 충돌하여 죽는 새들이 많다니 농촌에 허수아비나 맹금류 모양의 연을 매단 장대를 세워두는 이유를 알 만하다.

대단히 정교하게 그려서 실제와 착각하게 만드는 그림을 ‘트롱프 뢰유’라는 프랑스어로 부르는데 이 극사실 회화기법은 현대에 이르러 ‘트릭 아트’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대중들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유희 문화, 전시콘텐츠가 되었다. 트릭 아트가 우리 눈을 속일 수 있는 이유는 뇌가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근법을 활용하면서 정밀한 음영을 더해 물체가 바닥이나 벽면에서 튀어나올 듯한 공간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특정 각도에서 바라봐야만 입체로 보이도록 그림을 늘이거나 왜곡하여 그리는가 하면 빛이 굴절되거나 유리에 반사되는 느낌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실제로는 막혀있는 벽이 뚫린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으로 ‘착시’효과를 노린다. 관객이 직접 그림 속으로 들어가 포즈를 취할 때 이 트릭 아트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100%에 육박하는 스마트 폰 보급과 인스타를 비롯한 SNS를 통한 자기표현과 소통 욕구가 더없이 높아진 이즈음 눈으로만 보고 관객과의 일정 거리를 강조하며 엄숙했던 예전 감상 패턴은 시들해졌다. 직접 만지고 최대한 과장된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트릭 아트는 일상 가까이 생활문화 주역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2D 평면이 3D 입체로 보이는 착시를 극대화하고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등 대중적 재미와 상호작용을 앞세운 ‘놀이’가 되었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운 환경이 점차 가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짐짓 기대되면서도 일말의 두려움이 함께 한다. 45년 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가짜 (이미지)가 진짜 (실체)를 대체하고 나아가 더 진짜 같아지는 ‘시뮬라시옹’ 현상을 설파했다. 1970∼80년대를 전후하여 명멸했던 숱한 문화, 문학이론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마는가 싶었으나 소비사회 발전과 특히 미디어 환경 급변 속에서 실제보다 더 실물 같은 인공물이 현실을 대체하는 추세를 접하니 그의 주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보드리야르는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흉내 낸 이미지나 복사물’이 실제와 진짜 현실을 압도, 대체해버리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SNS나 매스컴 여러 채널로 보게 되는 연예인을 비롯한 타인의 화려한 일상, 연출된 이미지가 나의 실제 일상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음식을 먹는 현실 행위에 앞서 인스타에 올릴 예쁜 사진을 찍는데 집중하며 더 즐거워하는 세태 속에서 1990년대 크게 유행했던 대중가요 ‘세상은 요지경’의 풍자적인 가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20년 전 세상을 떠난 보드리야르가 “거봐, 내 말이 맞지?”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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