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 클로드 오퍼스와 첨삭 토크 열어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 행사
'글 완성도' 집중한 AI, 날카로운 비평 쏟아내
김 교수는 '잠재력'에 초점... AI에 일부 동의도
"AI 시대, 어떤 인간 되길 원하는지 논의해야"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3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에 마련된 강연장에서 인공지능과 첨삭 대결을 벌인 뒤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어크로스 제공
"홍보할 때는 챗GPT와 제미나이로 한다고 했는데, 많은 댓글이 '지금 인공지능(AI) 최강은 그게 아니다. 진검승부를 하려면 클로드 오퍼스랑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습니다. 어차피 질 거 대장한테 져야 저도 핑곗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훈훈한 봄바람이 금요일 저녁의 설렘을 북돋우던 3일. 서울 마포구 한 강연장엔 북적이는 거리를 뒤로한 채 '세기의 대결'을 보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주인공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AI. 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어크로스 발행)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자리는 사전 응모글 중 3편을 김 교수와 AI가 200명 앞에서 각각 첨삭해보는 이벤트였다.
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글쓰기 첨삭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게 다소 어색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터. 김 교수는 첨삭 결과를 공개하기에 앞서 "(10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맞붙은) 바둑하고 달리 글쓰기는 승패를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특히 자기 신변에 가까운 에세이는 '자기 좋은 대로 쓰면 그만'이란 게 내 입장이어서 첨삭이 한층 더 어려웠다"고 부연했다.
김영민 교수가 3일 첨삭 대상으로 뽑힌 에세이를 참가자들과 함께 읽고 있다. 어크로스 제공
먼저 클로드 오퍼스. "이 문장은 없는 것보다 못합니다" "'물론'은 독자가 제기할 반론을 글쓴이가 미리 막는 방어 동작인데 이 시점에서 독자는 아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등 예상외 촌철살인이 이어졌다. 글의 주제와 의도, 구조와 문체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면서도 글맛을 살린 표현엔 "이 문장은 건드리지 마십시오"라며 칭찬을 건네기도 했다.
AI가 전반적으로 글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인간 대표'인 김 교수는 글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김 교수는 "첨삭은 글쓴이가 후에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방향으로 할 수도 있다"면서 오퍼스의 일부 감상평에 "너무 가혹하다"거나 "저랑 생각이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AI와 동일한 지적을 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마지막 에세이를 두고는 두 첨삭문 중 무엇이 AI의 것인지 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이뤄졌다. 85%의 참가자가 정답을 택했다. AI가 문장 구조를 꼬집은 반면 김 교수는 구조는 유지하되, 글 흐름에 더 잘 부합하는 대체어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인간만이 글에서 읽어낼 수 있는 개성과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김영민 교수가 3일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에서 'AI시대의 글쓰기와 사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크로스 제공
그렇다면 김 교수는 왜 출간기념회에서 AI와 첨삭 대결을 자처했을까. 그는 'AI 등장으로 인한 대학교육의 위기'를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는 영화 '춘향전'에서 등장인물들이 시를 매개로 소통하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글쓰기 방식이 인간을 빚어내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그는 "AI 앞에서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지 논하지 않으면 우린 예상과 굉장히 다른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AI 대전환 시대 자기주도적 사유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교사가 학생의 글쓰기를 AI로 피드백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외주의 윤리'도 AI와 관련한 큰 이슈"라면서 "학생들만 보자면 AI를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선) 선생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결단에 가까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AI와 대결을 벌인 소감에 대해서는 "첨삭 결과가 많이 겹치지 않았다는 게 당분간 긍정적 신호로 여겨진다"면서 "앞으로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인간이 AI를 보완적 존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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