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문화예술회관, 23일까지
유진수 작가가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태극기는 월드컵 응원전에서 빠트릴 수 없다. 붉은악마 티셔츠에 태극기를 새기거나 사람들의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며 열띤 응원전을 펼친다. 물론 다양한 응원 도구에도 태극기 이미지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태극기가 친근하게 소비되는 지금과 달리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엄숙한 존재로 인식됐고, 태극기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유진수 작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엄숙한 시선을 친근한 이미지로 변화하는데 역할을 보탠 장본인이다. 오늘날 태극기가 생활 속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여러 사회적 변화가 있었지만, 유진수의 전시는 그 변화를 앞서 실험한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기록됐다.
계기는 1996년 서울 롯데화랑에서 열린 ‘태극의 사랑’ 전시였다. 당시 처음으로 태극기 그림을 전시했는데, 당시 전시장을 찾은 정부의 태극기 담당자가 그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태극기를 성조기처럼 일상적인 디자인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공적으로 이어졌고, 그해 10월 관련 법안이 발의돼 12월 통과됐다.
법안 통과로 일회용품을 제외한 다양한 물품에 태극기를 디자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 작가의 회화적 시도가 국가 상징을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 변화와 맞물린 순간이었다.
유진수 작. 창녕문화예술회관 제공
그는 태극기 이전에 태극에 먼저 주목했다. 6~7살 무렵, 청색과 홍색으로 구성된 태극의 문양을 바라보며 강렬한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그때는 태극에 담긴 뜻도 몰랐는데도 청홍의 태극 문양을 보면서 황홀감을 느꼈어요.”
태극은 그의 의식에 의미보다 감각으로 먼저 들어왔다. 태극에는 음(陰)과 양(陽)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우주의 원리라는 심오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만, 어린시절 본 태극 문양은 하나의 이미지로 먼저 각인됐다. 이후 작업하며 태극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 담긴 의미까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상징에서 출발했지만 작업이 깊어질수록 국가라는 경계는 희미해지고 자연과 인간, 우주의 질서가 그 자리를 채웠어요.”
창녕문화예술회관에서 23일까지 열리는 지역작가 초대전 ‘한터 아리랑’은 태극기와 함께 해온 작가의 30여년의 변화를 보여준다. 태극과 팔괘, 전통 문양, 한글 등을 활용해 태극기를 형상화한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에서 하나의 변화가 확인된다. 태극기의 외형에서 출발했던 작업이 점차 태극이라는 구조 자체로 들어간다는 것. 처음에는 청홍의 색과 태극기의 형태가 작품을 지배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색은 줄어들고 형상은 단순해진다.
“태극은 점차 하나의 기호가 되고, 그 주변으로 팔괘와 한글, 숫자, 점, 전통 문양이 들어왔어요.”
유진수 작. 창녕문화예술회관 제공
다양한 기호들이 그의 화면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작동하는 것 같지만, 작가에게는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그에게 기호들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남겨온 흔적으로 다가온다. 유진수는 어린 시절부터 원과 점, 숫자와 한자, 전통 문양 같은 기호에 관심을 가졌었다. “제게 기호는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입니다.”
그의 기억의 근원을 따라가면 고향이 있다. 그의 고향은 경남 창녕 대대리, 작가가 ‘한터’라고 부르는 곳이다. 지금도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에게 고향은 유년의 기억이 현재의 창작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며, 어머니의 기억과 자연의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우포늪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장소다.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며 바라본 늪의 풍경과 황토색, 그곳에서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감은 작가의 감각 속에 깊이 남았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전율’이라고 표현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경외스러운 감정은 어머니와의 경험이 준 선물이었다. 정초가 되면 작가의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고 목욕 재계 한 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우포늪으로 향했다. 자연을 향해 정성을 올리는 토속적 의례였다. 작가에게 이 기억은 종교적 의식보다 훨씬 원초적인 감각으로 남았다. 자연에는 인간의 눈으로 다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는 힘이었다.
“엄마가 저의 생기처”라는 작가의 말에서 유진수가 어머니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단초를 읽는다. 작가의 어머니는 일상에서 예술을 호흡하는 인물이었다. 어려운 시절에도 그림을 사서 소중하게 간직했고, 유진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유진수 작. 창녕문화예술회관 제공
이번 전시에 어머니와의 기억을 재료로 한 작품을 걸었다. 어머니가 입었던 한복과 사용했던 이불의 천을 잘라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고, 그 위에 태극과 기호를 새긴 작품이다. 그는 천을 잇는 바느질의 흔적까지 화면에 남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천’을 작품으로 재현했다는 사실보다, 기억을 물질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오래된 천에는 시간과 체온,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가는 그것을 해체하고 다시 이어 붙인다. 기억 역시 그렇게 작동한다.
“흩어진 장면들이 현재의 의식 속에서 다시 연결되면서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개인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 작업은 타인의 기억으로도 확장됐다. 작업할 천이 부족하던 어느 날, 작업실 복도에서 두 보따리의 오래된 천을 발견했다. 이웃집에서 집을 정리하며 내놓은 천이었다. 결혼할 때 가져왔던 천을 비롯해 한 집안의 생활사가 담긴 것들이었다. 작가는 그것을 작업에 사용했다.
이웃의 기억을 품은 천을 사용하는 순간, 기억의 주체는 작가 한 사람에서 타인으로 넓어졌다. 자신의 어머니와 유년의 기억을 꿰매던 작업이 타인의 삶까지 받아들이면서 하나의 공동 기억으로 확장된 것이다.
유진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창녕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엽전 형태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시각화한 작품 역시 유년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의 아버지는 쌀을 대규모로 사고파는 상인이었다. 장날이면 아버지는 쌀을 판 돈을 세곤 했는데, 어린 딸에게 돈다발을 건네며 백 장이 맞는지 세어보게 했다. 어린 유진수에게 그것은 하나의 놀이였다. 작가는 훗날 그 기억을 상평통보의 이미지와 연결했고, 부적의 기호와 결합해 화면에 풀어냈다.
유진수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기호들은 끊임없이 서로 만난다. 태극과 팔괘, 부적과 상평통보, 한글과 전통 문양이 한 화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작가에게 이들은 모두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만들어낸 기호라는 점에서 연결된다.
유진수의 태극 작업은 ‘국가’라는 의미를 넘어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삶, 음과 양의 순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우주적 기호가 된다. 이 지점에서 초기 태극기 작업과 최근작 사이의 변화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태극기를 일상으로 들여놓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태극이라는 기호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가 관심이다.
그가 기억에 남는 콜렉터로 탤런트 강부자를 언급했다. 강부자는 그의 작품을 4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강부자는 그의 작품을 본 뒤 직접 연락했고, 작품을 구입했다. 그의 작품들은 강부자의 딸과 아들의 집, 그리고 미국 등에 소장돼 있다고 밝혔다. 강부자는 작품 소장을 넘어 작가의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는 관계로 발전했다.
특히 창녕을 방문해 특강을 했을 때 창녕 군수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유진수와 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한 비중으로 소개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최근 작업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 화면을 채웠다면, 신작에서는 비우고 있다. 색채와 재료를 덜어내고 연필과 먹처럼 단순한 재료를 선택한다. 태극의 형태 역시 더욱 간결해진다. 작가는 이를 ‘극소의 재료로 극대의 효과’를 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30년 동안 태극을 그리며 수많은 재료와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이제는 그 축적을 다시 걷어내면서 본질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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