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인들이 이란 남부 호르무즈 해협을 순찰하고 있다. [신화]
[뉴시안= 최유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며 이란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인내심 없는 강경 일변도의 전술이 오히려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FT의 기드온 라흐만 수석 외교 칼럼니스트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에너지 인질’로 삼아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협상의 주도권이 이란으로 넘어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의 상황을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약 20%가 차단되면서 발생하는 충격은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파괴적일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단순히 휘발유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카타르산 헬륨 부족은 글로벌 반도체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우고 있으며, 비료 공급 차단은 식량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번 위기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봉쇄는 해결책 아니다”… 이란의 무자비한 생존 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면 이란이 곧 굴복할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이란 정권은 고유가를 활용한 비공식 석유 판매와 파이프라인 가스 수출로 버티며,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라는 초강수를 검토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란의 최고 지도자 무즈타바 하메네이. [로이터·AFP 뉴시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해협을 개방하려 해도 실효성은 미지수다. 이란이 드론과 고속정으로 유조선을 산발적으로 공격하기만 해도 해상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져 민간 상선의 운항은 사실상 중단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이란의 본토 기반 시설을 타격할 경우,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보복 공격하겠다는 전술로 맞서고 있다. 이는 중동 동맹국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시나리오다.
흔들리는 동맹, 무너지는 글로벌 질서
전쟁의 여파는 이미 서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유가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로 국가 마비 사태가 벌어졌고, 대선을 앞둔 프랑스 역시 ‘제2의 노란 조끼’ 사태를 우려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이미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지불해서라도 위기를 끝내야 한다는 체념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원유 공급 채널 [데일리사바]
전략 실종된 ‘트럼프식 외교’의 민낯
결국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비전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동맹을 구축하고 정교한 절충안을 찾아내야 할 시점에 나토(NATO)를 비난하고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행보는 이란의 협상력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쟁은 시작했으나 끝낼 방법은 모른다”는 비판 속에서,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이란의 ‘시간 끌기’ 전략이 성공할수록, 트럼프 행정부가 마주할 선택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호흐무즈 해협 인근의 화물선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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