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30일 마감한 신규 원전 부지 공모에 울주·영덕·경주·기장 4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 신청을 했다. 백지화 위기로 내몰렸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이 기사회생(起死回生)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부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던 이재명 대통령의 ‘유연한 실용주의’가 뒤늦게 화려한 빛을 낸 결과다.
사실, 인공지능(AI) 3대 강국과 반도체 2대 강국을 국정의 최고 목표로 내건 이 정부와 탈원전은 처음부터 엇박자였다.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완의 미래 기술인 태양광·풍력으로는 하루 24시간 연속 가동을 원칙으로 하는 AI 데이터센터의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과 친환경을 외친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우리의 현재 기술인 원전을 무작정 포기하겠다는 망국적인 탈원전은 이제 확실히 접어야 한다. 인간이 개발한 모든 기술은 어느 정도는 위험하다.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운 우리의 기술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전을 강화하는 ‘안전 기술’과 ‘관리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 원전 유치를 신청한 4개 지자체 모두 원전의 안전성을 주민들이 직접 확인한 곳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게다가, 탈(脫)탈원전은 우리만의 선택이 아니다. 1979년 스리마일아일랜드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실질적으로 포기했던 미국은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고 있다.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하고, 2050년까지 원전의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했던 영국도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25%로 끌어올린다. 프랑스 역시 신규 원전 건설을 국가 전략으로 삼기로 했고, 탈원전을 선언했던 이탈리아와 대만조차 원전 재개를 선언했다.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의 정치적 양녀로 앞장서서 탈원전을 외쳤고, ‘유럽 그린딜’을 설계했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탈원전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실토했다. 태양광·풍력에 혼을 빼앗겨 맹목적으로 탄소중립을 외치던 국가들이 AI 시대의 급속한 도래를 앞두고 에너지 안보의 강화를 위해 속속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달이 넘도록 종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중동 전쟁을 통해서 ‘중동발 위기 취약국가’라는 부끄러운 사실이 드러난 우리의 현실은 더욱 절박하다. 기름값과 환율이 치솟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이제는 극심한 ‘소재 대란’까지 견뎌내야 하는 형편이다. 남이 탄소중립을 외친다고 우리가 애써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워놓은 우리의 원전 기술을 함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원전은 인구 고령화와 소멸 위기에 시달리는 지자체에 일방적인 부담이 아니다. 오히려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 등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축복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규 원전 건설이 중동발 에너지 위기를 원만하게 극복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란 확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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