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부탁으로 매장에 붙여 놓을 작은 안내문을 작성했습니다. “돈카츠 속이 약간 분홍색인 것은 미오글로빈 단백질 때문입니다. 속까지 충분히 익혔기 때문에 안심하셔도 됩니다.”
육류를 가열해도 분홍색이 남는 현상을 핑킹(pinking)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 원인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간혹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봅니다. 일반적으로 육류를 가열하면 회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더 고온인 표면은 짙은 갈색이 되죠. 이 기준에서 본다면 분홍색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인간은 여러 감각 가운데 시각이 가장 잘 발달돼 있습니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우리의 먼 조상 격인 초기 영장류들은 나뭇잎 사이에서 먹거리를 찾기 위해 뛰어난 시각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사냥을 하게 되면서 그 능력을 더 진화시켰죠. 그래서 우리는 맛과 냄새에 앞서 색, 모양 그리고 질감 등 시각적인 요인으로 요리를 먼저 판단합니다.
그 판단 기준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학습되는데, 실제의 경험치보다 조금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장 입구에 놓인 음식모형이나 메뉴판 사진 등은 실제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표현하죠. 그리고 식품산업에서는 다양한 첨가물을 활용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인상을 주도록 식품을 가공합니다.
요리의 색은 식재료 본연의 색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조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식재료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화학반응을 통해 새로운 맛과 향뿐만 아니라 색 성분들 또한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마이야르 반응이란 것이 있습니다. 140도 이상의 고온에서 주로 나타나는 반응인데,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분해된 후 다양한 물질들로 합성됩니다. 대부분은 향과 맛 성분들이지만 멜라노이드 같은 색 성분도 일부 생성됩니다. 잘 구워진 요리 표면의 갈색은 바로 이 때문이죠.
육류도 가열하면 이 반응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색의 변화는 주로 단백질 변성, 즉 단백질의 구조 변화에 기인합니다. 육류에는 미오글로빈이란 단백질이 존재하는데, 혈액 속 헤모글로빈처럼 산소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산소와 결합한 미오글로빈은 붉은색이지만, 고온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 메트미오크로모겐으로 변성돼 회갈색이 됩니다.
돈카츠의 핑킹 현상은 이 변성 과정이 어떤 요인으로 방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처 다 변성되지 못하고 일부가 여전히 붉은색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특히 풍부한 육즙을 강조하기 위해 두툼하게 손질된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경우, 내부로의 열 전달이 상대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미오글로빈의 변성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리가 끝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속이 옅은 분홍색을 띠게 되는데, 특히 중심부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가열 조건 외에도 육류에 포함된 소량의 질산염 성분이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성분은 미오글로빈과 결합해 안정화시킴으로써 그 변성을 방해합니다. 햄이나 소시지 등에 첨가해 마치 생고기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래서 가열을 해도 본래의 색을 잃지 않죠. 하지만 우리가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데, 이 또한 가공육에 대해 학습된 결과입니다.
그러고 보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은 아주 과학적인 속담이었네요.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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