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학과 부정선거부패방지대 등 극우 성향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0월3일 서울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을 출발해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소셜미디어는 인지전의 새로운 전장이 되었다. 딥페이크와 매크로,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공격 수법은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뒤흔드는 치명적 위협으로 부상했다. 이제 정교해진 기만적 서사는 더 저렴하고 빠르며, 추적 불가능한 칼날이 되어 우리 사회의 신뢰를 겨누고 있다.
디지털·정보통신 강국이자 정치적 양극화 속에 국내외로부터 치열한 정보전에 노출된 한국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회는 발 빠르게 변하는 조작 기술에 대응해 끊임없는 입법으로 맞서고 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익명성 규제 시도에서 출발해, 2010년대 후반엔 매크로 기술을 이용한 여론 조작 방지로 확장됐다가, 2020년대 들어서는 갑자기 외국인의 온라인 활동 규제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2023년 발의된 첫 관련 법안은 외국발 게시물에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플랫폼에 최대 5년 징역 또는 5천만원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유사 법안들이 잇달았고, 올해 2월 초 발의된 법안은 선거운동 기간 중 외국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 자체를 플랫폼이 원천 차단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위반 시 3천만원 과태료만 부과하는 이 법안은 이전보다 형량은 낮아졌을지언정, 규제의 폭은 훨씬 독단적으로 변했다. 이 법안의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잠재적 여론 왜곡을 예방하기 위해 외국인을 온라인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논리다. 그 법적 근거는 현행 선거법상 선거운동은 선거권자에게만 허용되고, 선거권은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어 외국인이 없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개입을 방지하려는 취지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이처럼 무리하게 외국인을 표적으로 삼는 시도는 실효성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다. 우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건전한 공론장을 위축시킨다. 이는 결국 이용자들의 자기검열을 유도해 표현의 자유라는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 선거권의 유무로 댓글 금지의 근거를 도출하는 논리도 궁색하다. 동일한 논법이라면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자의 표현물 역시 금지해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무엇보다 헌법적 가치인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이지, 특정 신분을 근거로 표현의 자유를 일괄 박탈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기술 실효성 역시 의문이다. 온라인상에서 외국인을 정확히 식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유튜브·엑스(X)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입법에 순순히 복종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며, 외국 거주 한국인이나 외국 가상 사설망(VPN) 국내 이용자가 외국인으로 오인되어 역차별받을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투성이 법안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발의 시점이 공교롭다. 첫 법안은 윤석열 정권 시기에 발의됐고, 최근 법안은 외국 개입으로 선거가 왜곡됐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극우 일각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시점에 나왔다. 그리고 법안 발의자를 보면 모두 다 우파 국회의원들이다. 결국 일련의 무리수 법안들은 실재하는 안보 우려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부정선거와 같은 음모론적 서사를 강화하거나 이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외부의 적을 설정해 내부 결집을 꾀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 독소다. 진정한 방어적 민주주의라면 외부에 대한 공포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선동과 혐오로부터 우리 공동체의 이성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배제와 금지가 아니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 플랫폼 책임성 제고,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 확보다. 위협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더 단단히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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