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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정근 칼럼] 일론 머스크의 반도체 도전과 한국의 응전

통상적인 빅테크 기업들은 반도체를 직접 설계만 할 뿐 생산은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위탁생산)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테슬라도 지난해 7월 삼성전자와 약 170억 달러(약 25조 6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오정근 칼럼] 일론 머스크의 반도체 도전과 한국의 응전

일론머스크 (사진=연합)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세워 테슬라 차량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스페이스X 위성 등에 탑재될 칩을 직접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차량, 로보택시, 옵티머스에 쓰일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연산 최적화 칩은 물론, 우주 환경에 적합한 스페이스X용 고출력 칩도 맞춤형으로 제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공장에는 첨단 리소그래피(노광) 장비를 포함해 설계부터 테스트까지 반도체 생산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핵심 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통상적인 빅테크 기업들은 반도체를 직접 설계만 할 뿐 생산은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위탁생산)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테슬라도 지난해 7월 삼성전자와 약 170억 달러(약 25조 6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로봇, 자율주행차, AI 데이터센터용 첨단 칩 생산을 위탁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기존 파운드리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폭발하는 칩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TSMC와 삼성전자에 감사하지만, 우리 수요를 충족할 만큼 빠르게 생산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자체 공장 건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테슬라만이 아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AI 서버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주요 업체들의 증설 전략이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론은 HBM 시장 규모가 2028년까지 연평균 40% 성장해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며, 내년 설비투자액도 기존 180억달러에서 20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서버 1대당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생산 능력 자체가 실적과 점유율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른 모습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사진=연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화성 사업장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가동률을 점진적으로 상향하는 한편, 서버용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HBM과 DDR5 등 고부가 제품 비중도 확대 중이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거점인 평택캠퍼스 2단지 5라인(5공장)의 골조 공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파운드리 라인으로 추진되던 평택캠퍼스 4공장(P4) 2단계 라인을 첨단 메모리 라인으로 전환해 건설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역시 증설 대열에 합류하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청주캠퍼스 내 기존 M15 옆에 건설 중인 M15X 클린룸을 조기 완공하고,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M15X는 D램과 AI 반도체 전용 생산라인으로,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HBM을 포함한 첨단 D램 생산 능력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장기 증설 축인 용인 1기 팹도 애초 계획보다 이른 지난 2월 착공했으며, 2027년으로 예정된 준공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건설 속도를 내는 중이다. 용인 1기 팹은 M15X 6개 규모로, 향후 4개 팹으로 조성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 시설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글로벌 D램 시장 규모가 지난해 1000억달러에서 서버 및 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내년에는 170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용 서버와 AI 작업용 메모리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메모리 시장이 공급자 우위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이클에서는 증설 규모보다도 '언제,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중요해졌다"며 "AI 서버가 만들어낸 구조적 수요 확대 속에서 증설 속도가 곧 실적과 시장 주도권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D램은 공급 부족이 심하다. 마이크론이 최근 실적 발표에서 올해 상반기까지는 고객이 원하는 물량의 50%만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공급되는 50%마저도 고객사가 물건을 받기까지 6~9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낸드플래시도 공급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AI 모델이 학습할 때 GPU(그래픽처리장치) 바로 옆에 붙어서 연산 데이터를 즉각 넘겨주는 일은 HBM이 하지만, 강아지 사진 100만 장 등 학습에 필요한 기본 데이터를 저장하는 건 낸드플래시로 만든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다. 그런데 그간 많은 반도체 회사가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지 않았다.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들의 기술 추격으로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이나 투자 판단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앞으로 1년간은 공급량을 못 늘리고, 내년부터 조금씩 늘 것 같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은 100% 돌리고 있다. 결국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에 5공장(P5)과 6공장(P6) 재착공에 들어갔고,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짓는 반도체 공장(팹)을 좀 더 빠르게 완공하겠다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정태호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장이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을 방문,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로부터 리벨리온의 NPU 카드를 탑재해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운용되는 서버 랙 구성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

반도체는 이제 국가 단위의 경쟁시대다. 반도체 자급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국은 반도체 국내 생산을 위해 520억 달러(63조원)를 투입하는 ‘미국경쟁법’을 만들었다. 유럽연합(EU)은 ‘EU반도체칩법’을 만들어 430억 유로(58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도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반도체 특별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과정에서 반쪽짜리 특별법이 됐다.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반도체 인재 양성과 세제 지원 등 핵심 조항이 축소됐거나 삭제됐다. 첨단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R&D) 부서에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부족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려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업계의 호소 역시 지방 소외를 이유로 빠졌다. 시설 투자에 세금을 최대 50% 깎아주는 내용도 대기업 혜택이라는 이유로 축소됐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 하나를 세우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평택 사업장을 지을 때 송전선 설치에만 5년이 걸렸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전체 건설 기간은 당초 계획했던 5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렸다.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는 2021년 10월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 건설 계획을 공개했다. 공사는 2022년 4월 시작돼 2024년 2월 마무리됐다. 발표 이후 2년 4개월 만에 공장이 준공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약 4760억엔(4조2000억원)의 보조금과 토지 뿐 아니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규제까지 풀어줬다.

반면 삼성전자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2023년 발표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착공도 하지 못했다. 전력·용수 관련 인허가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다. 빨라야 올해 착공해 2030년 준공할 수 있다. 계획 수립부터 완성까지 7년이 걸리는 셈이다.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415만㎡(약 126만평) 규모로 구축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는 약 80%의 공정률을 기록 중이다. 당초 SK하이닉스는 2019년 계획을 발표했으나 인허가,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착공이 늦어지면서 2022년 공사가 시작됐다. 첫 번째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은 지난해 2월 착공했고, 내년 2월 첫 클린룸이 오픈할 예정이다. 계획 발표부터 준공까지 7년이 걸리는 셈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공업용수 공급과 관련해 여주시가 보상책 등이 마련될 때까지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며 "SK하이닉스가 여주 산업단지 조성과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약속해 용수 인허가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도 송전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지자체 도장을 받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 건설이 늦어지는 사이 반도체 기술은 빠르게 진화했다. 현재도 스마트폰이나 AI(인공지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1.4나노미터(㎚), 2㎚ 수준의 초미세 공정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 등은 자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2㎚ 이하 첨단 반도체의 양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반도체 업계의 속도 경쟁엔 미국도 뛰어들었다. 미국은 주정부와 의회가 나서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 덕분에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 공장이나 TSMC 공장의 경우 계획 발표 후 착공까지 단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 모두 중앙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공장의 부지 선정부터 용수, 전력 확보까지 '원스톱(One-Stop)'으로 해결해 주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중국의 한국 반도체 공장은 허가에서 완공 후 가동에 들어가기까지 약 2년이 걸렸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1년 11개월, 중국 시안 1공장은 2년 1개월 걸렸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 공장 설립 계약 체결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동을 시작했다. 삼성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기로 한 파운드리 공장도 2년 6개월이면 된다고 한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추세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 글로벌 수요를 예측해 생산 시기를 조율하는 초경쟁시대에 공장 짓는 데 경쟁국보다 서너 배 더 걸리면 경쟁우위는 유지될까. 전기와 용수 문제만이라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면 그나마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대기업 좋은 일 왜 나서서 하느냐는 분위기 탓에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시장도 어수선한데 연봉과 근로조건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삼성전자에도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성과급을 더 내 놓으라는 요구라고 한다. 설상가상 테슬라가 반도체 공장 설립을 발표하면서 연봉 4억에 기술인력을 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어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우려된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수요에 부응해 한국의 공급이 너무 느리다고 테슬라마저 반도체 공장 설립을 발표하는 실정인데 한국의 공정은 정부의 소극적인 지원 정책과 지역 이기주의 만연 등으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자 급기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대대적인 설비투자를 단행해 공정과 생산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연합)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 시안 공장에 전년(2778억 원)보다 67.5% 증가한 4654억 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중국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로 전체 생산량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 2019년 약 6984억 원을 투자한 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2778억 원을 투입하며 2024년 투자를 재개해 지난해에는 4654억 원까지 투자금을 늘리며 현지 생산 라인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파악됐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중국 우시에 있는 D램 생산 공장과 다롄의 낸드플래시 제조 법인에 1조 원 넘는 투자를 집행했다. 우시 D램 공장에만 2024년(2873억 원)보다 102% 증가한 5810억 원, 다롄 낸드 공장에도 52% 늘어난 4406억 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들에 조(兆) 단위 투자를 집행한 것은 인텔의 다롄 낸드 공장을 인수할 당시인 2022년 이후 처음이다.

결국 말로만 특별법 운운하며 반대기업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지원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토지보상 송전선건설 용수공급 등 만연한 지역이기주의는 반도체라는 최고의 양질의 일자리를 해외로 내쫓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한국수출은 7097억 달러였다. 그 중 반도체가 1734억 달러로 24.4%였다. 금년에는 그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결국 지금 한국경제는 반도체 자동차(부품 포함 수출비중 13.1%) 등 일부 품목이 이끌어 가며 1~2%의 성장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도체 자동차가 아니면 한국경제는 더욱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반쪽짜리 반도체특별법, 만연한 갖은 지역이기주의로 인공지능 시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속도전이 중요한 상황에서 심지어 반도체클러스터를 아직 아무 기반시설도 되어 있지 않은 새만금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침내 기다라지 못하고 테슬라가 직접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고 한국기업들은 중국에 투자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3년 후 테슬라의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면 한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성장률은 1%대로 추락하고 청년일자리는 급감하고 있다.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골든타임이다.

오정근(자유시장연구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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