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식 모델 요구 삼성·현대차·조선·IT업계 확산
노조 “성과급 제도화” 주장…올해 하투 핵심 쟁점 부상
재계 “통상임금 인정 땐 퇴직금·수당 부담 천문학적 증가”
법조계 “상법상 이익처분 권한 침해 논란도 불가피”
2026년 4월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SK하이닉스가 촉발한 ‘영업이익 N% 성과급’ 도입 요구가 산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를 넘어 자동차·조선·바이오·정보기술(IT) 업종까지 주요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영업이익 N%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2026년 상반기 임금·단체협상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특히 노조가 단순한 일회성 성과급 확대가 아니라 단체협약 등을 통한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사측이 이를 수용할 경우 성과급이 법적으로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퇴직금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까지 연쇄적으로 급증하는 ‘통상임금 폭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현재 사측에 영업이익의 15% 수준 성과급 지급과 성과급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진행한 사후조정도 지난 13일 최종 결렬됐고,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사측은 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대체 인력 확보 및 감산 추진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조 핵심 요구는 성과급 규모 자체보다 ‘제도화’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체계다.
노조는 회사 재량으로 지급 규모가 달라지는 현재 구조 대신,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사전에 명문화해 자동 배분하는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성과급 성격이 ‘경영 판단에 따른 보상’에서 ‘근로의 대가’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동안 법원은 기업 성과급에 대해 회사 재량이 강하고 지급 여부가 불확정적이라는 이유로 통상임금성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지급 공식이 단체협약 등에 명시되고, 근로자가 사전에 지급 규모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노동법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미 첫 번째 균열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올해 초 삼성전자의 목표인센티브(TAI)에 대해 사실상 임금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놨다.
당시 대법원은 “지급 규모가 사전에 어느 정도 확정돼 있고, 전략 과제와 매출 실적 등 성과가 근로 제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회사 재량 요소보다 근로 제공 대가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본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 판결 이후 성과급의 통상임금 편입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TAI 일부만 임금으로 인정됐는데도 직원 1인당 퇴직금이 최대 16%가량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간 추가 비용만 약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여기에 영업이익 연동형 대규모 성과급까지 통상임금 논쟁으로 번질 경우 부담 규모는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라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일부 사업부에서는 성과급 규모가 직원 1인당 최대 7억원 수준까지 거론된다.
노조 요구대로 영업이익 연동 구조가 단체협약에 포함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매년 고정적으로 거액을 지급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산업계 전반으로 급속 확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당기순이익의 30% 수준 성과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 역시 현대차와 같은 수준의 성과금을 임단협 요구 사항에 포함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정년 연장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올해 하투(夏鬪)가 격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선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슈퍼사이클 장기 호황에 진입한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의 최소 30% 성과 공유’를 임단협 요구안에 포함했다.
조선업계에서는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호황으로 수익성이 급증하자 노조가 “성과를 노동자와 직접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T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의 13~15% 수준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10% 수준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고, 오는 20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단체행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영업이익의 20% 성과급 재원 확보를 요구하며 이달 초 창사 이후 첫 파업에 들어갔다.
현재도 연장·휴일근로 거부 형태의 준법투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생산 차질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계와 법조계는 이번 흐름이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상법 체계 자체에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상법상 영업이익 처분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와 주주총회 권한이다.
단체협약으로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사전에 고정할 경우 사실상 주주의 잔여재산청구권과 경영진 재량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급 일부 확대 자체는 협상 가능 영역이지만 영업이익 처분 비율을 노사가 사전 확정하는 것은 사실상 기업 경영권 구조를 바꾸는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시행된 개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도 변수로 꼽힌다.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까지 연쇄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원청 대기업이 성과급 기준을 높이면 협력사들도 “원청 수준 성과배분”을 요구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계는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성과 배분은 여전히 경영진과 주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또 “성과급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노동자가 창출한 이익에 대한 정당한 분배”라며 “반도체·자동차·조선 산업 호황은 결국 노동자 희생과 생산성 향상 결과”라고 주장한다.
향후 핵심 쟁점은 성과급이 ‘근로의 대가’인지, 더 나아가 ‘소정근로 대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올해 임단협이 단순 임금협상을 넘어 한국 대기업 임금체계와 통상임금 법리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거액 성과급 문제는 더이상 개별이나 특정 업종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여당이 적극 나서 법령 정비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자율을 명분으로 방치할 경우 모처럼 회복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성과급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이나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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