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제안한 ‘청년 버스 하우스’ 구상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1990년 미국 에머리대를 졸업한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문명사회를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겠다며 홀연히 떠났다. 미국 전역을 떠돌던 그는 1992년 4월 알래스카의 오지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1960년대까지 운행되다 폐기된 ‘142번’ 시내버스를 발견했다. 사냥과 채집으로 대자연을 누비던 그에게 ‘142번 폐버스’는 안식처였다. 하지만 굶주림과 고립 속에서 그의 모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9월 사냥꾼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 듯한 구조 요청 메모와 함께 이미 두 달 전 숨진 매캔들리스를 폐버스 안에서 발견했다. 2007년 숀 펜 감독의 영화 <인투 더 와일드>가 다룬 실화다. 영화를 계기로 ‘142번 폐버스’는 모험가들이 찾는 곳이 됐지만, 죽음 앞에 절망했던 20대 청년에게 그곳은 폐허이자 비극의 현장이었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이 지난 7일 네덜란드 ‘보트하우스’를 본떠 폐버스를 개조해 대학가와 역세권에 제공하는 청년 주거 대책을 제안했다. 이른바 ‘청년 버스하우스’였다. 대당 개조 비용 5000만원이면 5000억원으로 버스하우스 1만개를 공급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황 의원의 SNS에는 “직접 버스에 사세요” 같은 ‘기득권 정치’ 비판이 이어졌다.
황 의원이 예로 든 보트하우스는 100년에 걸친 도시 인프라 속에서 정식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낭만적’ 사진 한 장으로 청년들을 폐버스에 밀어넣는 구상이 공감을 얻으리라 여긴 셈이니 반발은 당연하다. ‘버스하우스’ 구상에선 청년들의 절박함에 대한 이해도, 주거철학도 보이지 않는다. ‘142번 버스’는 한때 매캔들리스가 선택한 것이지만, 버스하우스는 벼랑에 몰린 2030들에게 강요된 공간일 뿐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더 절실한 건 황 의원이 속한 국회 국토교통위가 논의할 수 있는 전월세 보증금 지원 같은 대책들일 것이다. 비판이 쏟아지자 황 의원은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글을 내렸다.
지금도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해 반지하, 옥탑방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자신들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폐버스를 청년 주거 대책이라 말하는 감수성으로는 불평등 사회를 개선할 수 없다. 폐버스는 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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