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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과학자로 산다는 것] 전공 불일치라는 말 앞에서, ‘하고 싶은 것...

동서대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 분야 융합 교육을 할 때도, 지금 서울여자대학교에서 AI융합콘텐츠를 가르치며 매년 달라지는 기술과 콘텐츠 환경을 마주할 때도, 내 안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뭐든 할 수 있으니...

[여성과학자로 산다는 것] 전공 불일치라는 말 앞에서, ‘하고 싶은 것...

낯선 기호 앞에 서다

대학원 첫 학기, 연구실 책상 위에는 낯선 기호들이 잔뜩 적힌 노트가 놓여 있었다. 미분, 적분, 행렬…. 고등학교 때 "이걸 왜 배울까" 하며 지나쳤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언어가 되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날이 많았다. 미대에서 익숙했던 "느낌"과 "해석"은 공대의 시간표 앞에서 자주 무력해졌고, 어떤 날은 모든 일을 분 단위로 쪼개며 효율을 따지는 분위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를 자주 물었다.

디자인에서 공학으로, 전공의 벽을 넘다

나는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 성향이 강했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디자인을 업으로 삼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미술 입시를 했고, 그 길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계산적으로 딱 떨어지는 방식이 더 편한 나에게 미술의 세계는 어딘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이 길로 취업을 준비해 보자"던 때, 전자공학과 교수님께서 새로 만든 융합대학원 이야기를 꺼내셨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필요하다. 특히 미대에서도 오면 좋겠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고,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아직 '모르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취업을 내려놓고 대학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2000년 당시, 그 선택에는 늘 같은 경고가 따라붙었다. '전공 불일치'. 특히 교수를 꿈꾼다면 치명적이라는 말. 친하게 지내던 여러 교수님들까지 한목소리로 말렸다. "그 길로 가면 교수는 어렵다."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특별히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이 인생을 촘촘히 설계하기보다, "네가 선택한 일은 네가 책임지면 된다"고 믿어주셨고, 나는 그 믿음 위에서 한 번쯤은 내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의 걱정에는 "저, 교수 할 생각 없어요"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정말 그때는, 제가 어디까지 가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수식이 '시험'이 아닌 '도구'가 되던 순간

공대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가지 않았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 환경, 지시를 따라야 하는 연구실의 질서,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수학과 공학의 기초…. 낯선 언어를 몸에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고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전환점이 찾아왔다. 수식이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기호'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던 계산이, 더 나은 실용적인 해법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이해했을 때, 나는 묘하게 설렜다. 공부가 '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고 움직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석사를 마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박사까지 했다. 미대생이 공대 연구실에서 석사와 박사를 무사히 마친 뒤 제게 남은 가장 큰 수확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누군가 내게 전혀 다른 일을 맡겨도 "시간만 조금 주면 해볼 수 있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그 자신감이 이후 내 삶을 움직였다. 동서대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 분야 융합 교육을 할 때도, 지금 서울여자대학교에서 AI융합콘텐츠를 가르치며 매년 달라지는 기술과 콘텐츠 환경을 마주할 때도, 내 안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뭐든 할 수 있으니, 해보자." 그 목소리가 나를 다시 앞으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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