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54% 호르무즈 의존…원료값 폭등에도 제품가 '3~6개월 묶여'
NCC 가동률 60%대 붕괴 위기…여천·LG화학·롯데케미칼 잇달아 셧다운
정부, 27일부터 나프타수출 금지 조치 발동
국내 주요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가 잇달아 멈춰서며 연간 1295만 톤 규모의 에틸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중단이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나프타 수입의 54%를 단일 해역에 의존한 공급망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정부가 국내 수요를 맞추기 위해 27일부터 5개월 간 나프타 수출 금지 조치를 전격 시행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원료는 매일 오르고, 제품값은 수개월째 묶인다'는 계약 구조의 모순이 가동할수록 손실이 쌓이는 역마진 고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주요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가 잇달아 멈춰서며 연간 1295만 톤 규모의 에틸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제조 산업 중간재 허브 '에틸렌', 세계 4위 생산 규모의 한국
에틸렌은 나프타(원유 증류 화합물)를 800°C 이상으로 열분해(NCC)할 때 약 30%의 수율로 생산되는 기초 유분이다. 한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은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4위다.
무구한 활용성 덕분에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은 고밀도 폴리에틸렌 등으로 가공되어 포장재, 의류 등 소비재부터 이차전지 배터리 분리막, 반도체 웨이퍼 이송 용기, 조선용 선박 도료 등 수천 종에 이르는 첨단 산업재의 필수 원료가 된다. 즉, 에틸렌은 국내 모든 제조업을 연결하는 핵심 중간재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나프타 수입 단가가 지난 23일 배럴당 127달러(톤당 1068달러)를 돌파함에 따라, 이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에틸렌 생산 공정은 심각한 원가 압박에 직면했다. 나프타 수입가 증가 폭이 에틸렌 판매가 인상 폭을 압도했다. 석유화학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이달 초 35달러까지 폭락 후 최근 241달러까지 회복 했지만 아직 손익분기점(300달러)을 밑돌고 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공급 부족에도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전방 산업인 자동차·가전 업계 역시 경기 침체로 인해 비싼 원료값을 받아낼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에틸렌 판매가가 원가 상승 폭을 따라잡지 못하는 수요 위축에 가로막히면서 공급이 귀함에도 만들수록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2026년 나프타 가격 변동 추이(1/1~3/25, 단위 : $/배럴).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수익성 악화에 따른 주요 설비 셧다운 확산
나프타 가격 상승분을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국내 기업들은 가동할수록 손해가 증가하고 있다. 원료비 부담이 판매 수익을 압도하며 적자 폭이 커졌다. 기업들은 결국 생산을 계속하는 대신 설비 가동을 멈추는 방식으로 손실 차단에 나섰다.
역마진은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산업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다. 석유화학 제품은 통상 3~6개월 단위 장기 계약을 통해 판매된다. 계약 체결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납품 단가가 사실상 고정된다.
반면 나프타는 국제 유가에 연동돼 하루 단위로 가격이 변동한다. 원재료는 즉시 비싸지는데 제품 가격은 뒤늦게 반영되는 후행 가격 구조가 형성되는 이유다.
여기에 최근 글로벌 수요 둔화로 제품 가격 협상력이 약화되면서 상승한 원가를 제때 전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겹쳤다. 투입 시점과 판매 시점 간 시차, 고정 계약 구조, 수요 부진이 맞물리며 원가 급등-판매가 고정의 역마진이 고착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나프타 재고가 보름치 미만으로 떨어지고 적자가 누적되자 국내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은 60%대 붕괴 위기를 맞았다. 여천NCC는 지난 10일 여수 2·3공장 폐쇄를 확정했으며, LG화학은 23일 에틸렌 80만 톤 규모의 여수 2공장 가동을 멈췄다.
LG화학 측은 공시를 통해 “공급망 안정에 주력하되 원재료 수급 안정화 시 신속히 재가동해 매출 차질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역시 27일부터 여수 공장 정기보수를 조기 실시하며 사실상 감산에 돌입했다. 유관 연구기관 관계자는 “석유와 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원재료의 공급 불안이 동시에 번지는 국면이라 제조업 전반에 가해지는 충격이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수출 제한 및 러시아산 수입 재개 강수
산업통상부는 원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정유 4사가 생산한 나프타의 해외 수출을 금지하고 전량 내수용으로 전환하는 수급 조정 조치를 발표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긴급 수급 조정명령 발동과 비축유 방출을 통해 NCC 가동 중단 위기 시점을 5월까지 늦출 수 있으며, 수급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는 어제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 재개를 발표했다. 양 실장은 “러시아산 에너지 도입 시 달러 외에 위안화나 루블화 결제가 가능하며 이에 따른 2차 제재도 없다는 점을 미 재무부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 재개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단됐던 공급망을 4년 만에 다시 여는 ‘비상 조치’다. 전쟁 전 국내 나프타 수입의 23.5%를 차지했던 러시아산은 국제 제재와 달러 결제 차단으로 인해 그간 도입이 가로막혀 왔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3조 원을 투입해 LPG 기반 설비 전환을 지원하고, 정유 공장과 석유화학 공장을 통합 운영하여 생산 원가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 개편을 유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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