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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나는 많은 남편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듣는 말은 ‘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라는 것이다. 그 말은 대부분 사실이다. 그들은 일을 했고, 책임을 다했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 노력과 별개로, 가족 안에서 그는 점점 혼자가 되어간다.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고, 같은 식탁에 앉고 있고,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왜 ‘혼자’라는 감정이 생기는 걸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의 차이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많은 남성들은 관계를 ‘함께 있는 상태’로 이해한다.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큰 문제가 없으면 그 자체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 많은 여성은 관계를 ‘정서적 연결’로 이해한다. 대화가 오가고, 감정이 공유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관계가 유지된다고 느낀다.
이 차이는 처음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큰 간극을 만든다. 남편은 말한다. “우리는 계속 같이 있었잖아.” 아내는 말한다. “같이 있었지만, 혼자였어.” 이 두 문장은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정법정에서 만난 한 남편은 이렇게 항변했다. “저는 퇴근하면 집에 바로 들어갔습니다. 주말에도 거의 가족과 함께 있었고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집에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이야기는 달랐다. “같이 있어도 대화가 없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은 누가 더 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다.
남편에게는 ‘함께 있음’이 관계였고, 아내에게는 ‘연결되어 있음’이 관계였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점점 더 말이 줄어들고, 아내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은 이렇게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집에서 뭐지?’ 분명 가족을 위해 애를 쓰고 살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더 조심스러워지고 말을 더 줄인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혹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 침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결과를 만든다. 아내는 그 침묵을 ‘무관심’으로 받아들이고, 남편은 아내의 반응을 ‘이해받지 못함’으로 느낀다. 그렇게 서로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았느냐가 아니다. 서로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사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이다.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짧게라도 표현하는 시도였을 수 있다. ‘오늘 좀 피곤했어’, ‘요즘 생각이 많아’ 이 정도의 문장만으로도 상대방이 느끼는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의 침묵을 곧바로 ‘무관심’으로 단정하기보다 그가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어떤 남편에게 침묵은 관계를 포기한 신호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방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혼자가 되는 순간은 누군가가 일부러 거리를 두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갈 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쩌면 관계를 다시 이어가는 시작은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귀옥 변호사의 남자의 감정 리포트] 8화는 ‘침묵형 남편의 속마음 알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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