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의 역봉쇄로 새로운 국면이 되었다. 미국이 시작한 이란에 대한 공격이 7주를 맞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하고 기뢰투척하자 중동산 원유를 수입하는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휴전 회담 중 미국의 역봉쇄 조치는 하루 6천억 원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서 벌어들이던 이란 경제의 숨통을 완전히 틀어쥐게 되었다. 그래서 이란의 입장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미국의 참수 작전으로 지도자를 잃어버리고, 수출입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이란은 현재 전쟁 중 가장 강력한 생존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가의 머리에 해당하는 이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잔존한 종교 지도자 그룹과 혁명수비대 세력이 미국과의 투쟁을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란은 미국이 정한 시한 내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고분고분 들어주고 명목상 휴전이자 실질적인 패전 합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을 두고 두 가지 방향의 예측이 가능하다. 첫째 이란이 처한 객관적인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최소한의 퇴로를 보장받고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란이 그동안 만들어 둔 ‘서양 제국주의’로서 미국에 대한 이미지와 정체성이 있고, ‘투쟁하는 이란’이라는 정체성이 있어서 미국식 요구에 완벽하게 굴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대 입장이 있다.
두 가지 입장은 국제정치학의 안보를 바라보는 두 가지 명확한 기준과 관련되어 있다. 1960년대 초기 안보 연구자인 아놀드 울퍼스(A. Wolfers)는 국가가 안보를 추구한다고 하는 주장이 추상적이라면서 안보 연구에 두 가지 기준을 구분해 주었다. 그는 안보를 ‘획득된 가치에 대한 위협의 개연성이 낮은 상태’로 규정하고 첫째 객관적 안보(Objective Security)로서 획득한 가치에 대한 '실제적인 위협이 부재한 상태(absence of threats)'와 둘째 주관적 안보(Subjective Security)로서 획득한 가치가 공격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부재한 상태(absence of fear)'로 구분한 것이다. 즉 국가 차원에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실체적인 위협이 없는 것과 주관적인 두려움이 없는 상황을 구분한 것이다.
객관적인 안보를 강조하는 입장은 신현실주의로 이어진다. 무정부상태라는 조건에서 국력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중심으로 안보이론이 발전하였다. 최근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자신의 국력에 60% 이상을 추격해오고 있어 1870년대 미국이 상대한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객관적인 위협을 이루고 있다는 논의가 객관론을 잘 보여준다.
반면 주관적인 안보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최근 연구가 활발한 주제가 있다. 바로 구성주의를 토대로 한 ‘존재론적 안보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존재론적 안보론은 용어 자체가 낯설 것이다. 이 이론은 정신분석학 즉 심리학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기억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이 이론은 출발한다. 자신의 전기 혹은 개인의 역사가 기억이 되지 않는다면, 그는 신체는 멀쩡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고 다른 이와 차별화가 된다고 믿은 자신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유지하고 다른 이에게 그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다는 헤겔식 ‘인정(recognition)욕구’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제정치학에 도입되면서 국가가 정체성의 단위가 되며 국가가 가진 역사적인 궤적이 인생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국가는 물질적인 조건을 유지해야 생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체성을 유지해야 독립적인 국가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존재론적 안보 연구가 한국 안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왜 전랑외교를 하는지를 중국식 중화주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보정책으로 보는 연구가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제국주의로 포장하고 이런 제국주의에 맞서 핵무기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고난의 행군을 보내고 경제 파탄 책임을 미국 제국주의로 돌린다는 연구도 있다. 다양한 국가들의 역할 정체성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소개되면서 구성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이란의 관계도 존재론적 안보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이란의 경우 1979년 신정주의를 도입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가 이란을 망쳤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보수적인 신정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담론화해 왔다. 아랍인들과 다른 페르시아 특유의 공세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란이 중동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다르다는 인식과 함께 이 지역의 패자라는 인식으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버텨왔다.
그런데 이란이 이제 미국과 타협을 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야 한다. 그동안 고생고생하며 농축한 우라늄을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굶어 죽어도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이런 보수주의 통치 원리가 정치적 생존과 직결된 세력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투항하는 것 자체가 관념적인 패배이자 정신의 자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국가가 처한 상황과 주관적인 정체성 유지라는 두 가지 기준이 지금 이란이 협상에서 왜 애를 먹을지를 이해하게 하는 한 가지 열쇠다. 조선 위정척사파가 개항기에 고통받았던 것처럼 관념을 버리는 것이 어쩌면 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국가의 정체성을 버리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부터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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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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