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석 대구문예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이 특별전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주말이면 대구 중구 경상감영공원 옆 대구근대역사관 건물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외관과 근대 건축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이곳은 대구 도심을 대표하는 사진 명소가 됐다. 웨딩 스냅 촬영은 물론 여행객과 청년들이 SNS에 남길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예쁜 근대의 건축물’로만 알고 즐기기에는 대구근대역사관이 가지는 상징성은 간단치가 않다. 대구 근현대의 역사가 배어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932년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세워진 이곳은 식민지 경제 수탈의 상징이었다. 당시 조선식산은행은 일제의 산업·농업 정책을 뒷받침하며 조선 경제를 통제하던 핵심 금융기관이었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되며 산업화 시대를 거쳤고, 2011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식민 권력의 상징이었던 공간은 이제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대구근대역사관 뒤에는 식민지와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도시 성장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건물은 사진의 배경을 넘어 대구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대구의 근대역사를 아우르는 대구근대역사관은 개관 이후 상설전 개편과 특별전, 교육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역사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그 중심에는 2022년 말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으로 부임한 신형석 본부장이 있다.
울산대곡박물관장과 울산박물관장을 역임한 그는 울산박물관 건립을 이끌었던 박물관 전문가다. 박물관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구근대역사관과 대구향토역사관,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을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고향 대구를 위해 쏟아 붓겠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 전시 전경. 황인옥기자
◇ 박물관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공간
신 본부장 부임 후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박물관의 존재 이유였다. 그는 박물관을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국한된 기능에서 벗어나 도시의 기억을 축적하고 시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공기관으로 바라보았다. 한 점의 유물과 한 장의 사진은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는 매개체로 인식하며, 이를 연구하고 해석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박물관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본 것.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도 함께 자라납니다. 박물관의 역할은 대구의 역사를 매개로 대구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의 박물관 운영 철학 역시 그런 인식에 맞춰졌다. 대구라는 도시의 역사를 연구하고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을 세우고 미래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대구근대역사관 운영의 방향성이었다.
“전시는 단순히 유물을 진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자신이 사는 도시를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결국 박물관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대구근대역사관 전시 전경. 황인옥기자
◇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는 전시
대구근대역사관은 현재 상설전과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경상감영의 역사에서부터 근대도시 대구의 형성, 국채보상운동과 독립운동,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도시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들이다.
특히 특별전 ‘꺼지지 않는 불꽃, 대구 학생 항일운동’은 대구 학생들의 항일운동을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구가 대한민국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형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시민들에게 다시 인식시키려는 시도로 작동한다.
“특별전은 대구 학생들이 보여준 저항과 희생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 다시 위치시키고,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전시입니다.”
그는 박물관이 “시민이 찾아와 배우고 체험하며 다시 찾는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특별전과 답사 프로그램, 역사 강연, 시민 참여형 체험을 확대하고 있으며, 문화예술 분야와 협업해 청년예술가들이 대구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이를 창작으로 연결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라면 대구의 역사를 아는 것이 큰 자산이 됩니다.”
◇ 좋은 전시는 좋은 자료에서
신 본부장은 좋은 전시의 출발점을 ‘자료’에서 찾는다. “한 장의 사진, 한 권의 문서도 당시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는 역사입니다.” 박물관 전시는 화려한 연출보다 얼마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과 영상기법을 활용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사료와 유물이 없다면 역사적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데, 그는 시민들의 기증과 연구자들의 제보, 학예사들의 현장조사를 통해 꾸준히 자료를 축적해 왔다. 학술조사와 연구보고서, 전시도록 발간을 지속하는 것도 도시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대구근대역사관 전시 전경. 황인옥기자
역사적 유산은 경쟁력·관광 콘텐츠
미술·음악 문화예술 꽃 피우는 뿌리
시립종합박물관 건립 반드시 필요
◇역사는 대구의 가장 큰 관광자원
신 본부장은 역사와 관광과의 연계도 언급했다. 그는 대구는 바다와 같은 천혜의 자연적인 관광자원을 가진 도시는 아니지만 5만 년 전 선사문화에서부터 경상감영, 국채보상운동, 학생독립운동, 2·28민주운동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풍부한 역사적 자산을 품고 있고, 그런 역사적 유산이 도시의 경쟁력이자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구의 강점을 토대로 한 그의 구상은 대구의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역사문화벨트’ 구축이다. 선사유적에서 달성공원과 대구향토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 경상감영공원을 하나의 역사축으로 연결해 시민과 관광객이 도시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을 체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관광도 결국 역사에서 출발합니다.”
이 같은 구상은 자연스럽게 시립종합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대구는 전국 특·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시립종합박물관이 없는 도시다. “도시의 역사를 한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시작해도 완공까지 7~8년이 걸립니다.”
그가 말하는 종합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대구의 정치·경제·문화·생활사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도시의 기억 저장소다. 무엇보다 대형 수장고를 마련해 흩어진 역사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인 ‘토대’도 그런 맥락과 연결됐다. “토대가 튼튼해야 그 위에서 문화예술도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박물관은 미술관이나 공연장보다 앞선 문화 기반시설이다. 문화예술이 꽃이라면 박물관은 그 꽃을 피우는 뿌리인 셈이다.
대구근대역사관 전시 전경. 황인옥기자
◇ 도시의 미래를 만드는 박물관
그의 철학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대구시립 3개 박물관은 전시와 교육, 연구 기능을 강화했고,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평가에서 모두 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품은 대구근대역사관이 대구의 기억을 시민과 공유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 결과다. “박물관은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를 넘어 도시의 기억을 축적하고 시민의 정체성을 키우며 미래를 설계하는 문화 플랫폼이어야 하는데, 대구근대역사관은 그 방향성으로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우리 도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문화도시 대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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