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조선일보가 실시한 조사(2026년 4월 27~30일 18세 이상 3043명 대상 웹 설문조사,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1.8%포인트)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0대와 40대의 81%가 ‘불공정한 사회 구조에 분노를 느낀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연령대에서 나타난 분노 지수는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응답자들이 불공정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항목이 복수 응답 기준 ‘자산 격차’였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85%가 자산 격차를 불공정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주거 격차를 선택했고, 소득 격차가 불평등과 불공정의 원인이라는 응답은 78%로 그 뒤를 이었다.
불공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경제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공정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이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87%는 물려받은 재산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과 불공정이 발생한다고 봤고, 71%는 교육 및 취업 기회의 불평등과 특정 집단에 유리한 정부 정책을 불평등과 불공정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 뒤를 잇는 항목은 개인 노력의 차이였는데, 이 조사 이후 불평등과 불공정이 더 심화됐다고 느낄 만한 사안이 발생했다. 바로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아마도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해당 조사를 했다면 불평등과 불공정을 느낀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더 높았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문제는 이러한 불공정 인식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는 1인당 평균 6억원의 성과급을 받게 되고, 적자를 낸 파운드리와 시스템 LSI 사업부도 1억 600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같은 삼성전자라도 가전과 모바일 부문은 흑자를 냈음에도 성과급 600만원을 받는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성과급 격차가 약 100배에 달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상황이 삼성전자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카카오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도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 기업에서도 대규모 성과급이 지급된다면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상당 수준에 이를 수밖에 없다.
다른 대기업들도 성과급 요구하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삼성전자의 성과급 지급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조사에서 40대와 60대가 지금의 세상을 가장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고 인식한 만큼,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극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40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꼽힌다. 한국갤럽의 5월 3주차 여론조사(5월 19~21일 전국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전화 면접 조사,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40대와 50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4050 세대는 수적(數的)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대다. 지난 대선을 기준으로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선거인 수를 보면, 4050 세대는 전체 유권자의 36.8%를 차지한다. 이런 세대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띠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의 성과급 문제가 이들의 이념 성향 혹은 투표 성향을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경제 활동의 한복판에 있는 40대와 50대가 해당 사안 때문에 상당 수준의 상실감과 박탈감을 갖게 된다면, 이들의 분노가 어느 방향으로 표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선 이들 4050 세대는 자신들이 느끼는 불공정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박탈감의 원인을 삼성전자라는 기업에서 찾을 가능성이 있다. 즉, 삼성전자라는 기업과 삼성 초기업 노조의 대응 방식을 자신들 박탈감의 원인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불만이 곧바로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들의 박탈감과 불공정하다는 감정의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삼성전자 사태에 정부가 직접 개입했고, 그 결과가 상당수 사람들에게 심각한 박탈감을 안겨줬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박탈감은 부러움과는 다른 감정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부러움은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부럽다’의 명사형이다. 이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희망을 이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는 감정에 가깝다. 마치 영어에서 ‘wish’와 ‘hope’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wish는 현실화 가능성과는 별개로 뭔가를 바란다는 뜻인 반면, hope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희망을 의미하는데, 부러움은 hope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당수 국민이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럽다가 아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꿈꾸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일부 삼성 직원들에게는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이 아니라 박탈감에 가깝다. 박탈감은 대체로 분노를 동반하게 된다. 그런데 분노는 정치적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분노가 정치적 동력이라는 사실은, 투표율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분노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 피플팀장(앞줄 왼쪽)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앞줄 오른쪽)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연합뉴스
박탈감 느낀 국민의 분노, 삼성전자 아닌 정부 향할 수도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삼성전자 사태에서 정부가 개입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자칫 정부가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만일 실제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기존 40대와 50대의 이념 지향 패턴과 정치 행태는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이 지지해 온 진보 정부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라고 하면 ‘공정’과 ‘공평’을 연상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공정·공평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사람들만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평생 모을 수도 없는 금액을 한 번에 성과급으로 받으니, 이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허무감,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 봤자 이 정도의 금액을 손에 넣기는 힘들 것이라는 좌절감, 그리고 자신의 노력은 보상받지 못하는데 일부 대기업 근로자들만 보상을 받는다는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결국 분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투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와 이제 일주일 남짓 남은 지방선거와의 연관성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불공정과 불평등의 원인 중 가장 많이 꼽힌 것이 자산 격차와 주거 격차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산 격차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만, 주거 격차도 심화될 수 있어, 이 점이 이들 세대의 분노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권이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노력해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 정권은 대출 규제와 세금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 했는데, 이번 삼성전자의 성과급 문제는 이런 정부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 인근 지역, 예를 들어 동탄 지역 아파트 값이 벌써부터 들썩인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성과급 수령자들이 이번 교섭 결과에 포함된 회사 차원의 저리 융자와 성과급을 합해 자가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데 만일 카카오와 현대차 등의 대기업 역시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게 되면 아파트 가격 상승은 특정 지역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감정적 박탈감과 분노는 좌절감으로까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이런 성과급 지급이 제도화된다면 대기업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 사이의 자산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어, 그 분노 지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정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확산되면, 정치적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파업을 막는 데 일조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차라리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일부만의 생각은 아닐 수 있다.
반드시 선거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런 박탈감과 분노를 치유해야 할 의무는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바로 이런 대응이 위기 관리 능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신율 명지대 교수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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