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주니’는 창문을 파는 회사에서 일한다. 그는 말했다. 미국 IT 대기업에는 무수히 많은 복지 혜택이 있지만, 사실 최고의 복지는 곧 연봉이라고. 연봉이 곧 복지라고. 그래서 얼마를 버느냐고 물어보았다. 이 친구는 곧이곧대로 말해주지는 않고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6-digit number”라고 답했다. 달러로 일, 십, 백, 천, 만, 십만... 음, 많이 받는군. 중요한 것은, Digit은 자릿수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친구의 연봉은 이제 그만 잊기로 하자.
‘주니’에게 업무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냐고 물었다.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아, 실수를 깨달았다. 나는 문서 없이 페이퍼리스(paperless) 방식으로 업무를 보냐고 질문을 정정했고, 대체로 그렇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친구의 혼란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수사적 표현으로 “디지털 대전환을 대비하여”라는 말을 한다면, 나 또한 잠깐 ‘디지털’이 무슨 뜻인지 고민했으리라. 십중팔구는 클라우드 컴퓨팅 또는 가상현실 기반의 업무처리 방식을 의미했을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디지털(Digital)은 우리에게 컴퓨터와 관련된 만능의 단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단어의 정확한 기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에 언급된 Digit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단어와 Digital 사이에는 ‘-al’이라는 두 개의 알파벳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하나는 ‘자릿수’를 뜻하고, 하나는 때로 ‘가상현실’을 뜻한다니, 너무 차이가 커서 이 정도면 완전히 별개의 어원으로부터 도출된,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단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그럴까?
널리 알려진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Digital) 또는 Digit이라는 단어는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Digitus에서 유래했다.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셈을 하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셈을 하고 값을 치르는 것에서 물물 교환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문명 발전이 이루어졌으리라. 바로 여기서 의미가 파생되어 Digit이란 셈하는 단위로서 ‘자릿수’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 의미를 확장해 보자. 셀 수 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 다음에는 2가 나와야지 중간에 뜬금없이 1.1이나 1.2, 또는 그 사이의 연속적인 아무 소수점이 나온다면 도저히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연의 물체는 대개 연속적이다. 초록과 붉음이 울긋불긋한 단풍잎을 떠올려 보자. 만약 어디서부터 초록이고 어디서부터 붉음인지 ‘셈을 하고자’ 한다면 도저히 경계를 긋지 못해 아주 난처할 것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디지털화(Digitization)는 바로 이 ‘셈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연속적이고 온전한 대상을 불연속적이고 근사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방식으로. 그 단풍잎을 쪼개고 쪼개서, 어딘가의 색채는 초록 81% 붉음 19%로 표현하고, 또 어딘가의 색채는 초록 35%와 붉음 65%로 표현한다. 그런 식으로 1만 개쯤 쪼개서 각 조각에 색채를 부여하고 다시 이어붙인다면 멀리서 볼 때는 실제 단풍잎과 거의 차이가 없지 않을까. 5000만 개쯤 쪼개서 이어붙인다면 눈으로는 결코 그 점묘화와 실제 단풍잎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50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가 하는 일이다. 5000만 개의 점에 각각의 고유한 색상을 부여하고, 그것을 이어붙여 눈으로 볼 때는 실제 단풍잎과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풍잎이라는 어떤 온전한 자연물을 5000만 번 ‘세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셀 수 없는 무언가를 쪼개고 또 쪼개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셀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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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있다는 것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제한된 물리법칙 위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가상현실 기반 업무프로세스 환경을 지칭하며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혀 잘못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직관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Digit과 Digital의 연관성은 다름 아닌 ‘셈하는’ 것이다. 셈을 하는 손가락에서 파생되어, 셈을 하는 단위는 Digit이 되었고, 셈을 하는 방식은 Digital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어떤 불가해해 보이는 대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쪼개어서 셈을 하고 계산을 하는 것, 그리하여 상상의 영역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디지털’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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