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B잡
ESG
금융·증권
비즈
과학/IT
생활·경제
정치
스페셜기획
사람들
이야기쉼터
전국
미네르바의 눈
시큐리티팩트
MICE
섹션 선택
섹션 선택
이동
[신(新)인물탐구(27)] LG그룹 구광모 회장⑥ 기업문화 - 고객이 기준이 된 순간, 조직이 바뀌었다
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입력 : 2026.04.21 00:30
ㅣ 수정 : 2026.04.21 00:30
[기사요약]
고객 기준으로 재설계된 조직
자율과 통제 동시에 설계된 문화
기준중심으로 정렬된 기업
한국은 강소대국이다. 2025년 기준 인구는 5100만여 명이지만, 세계 GDP 12위에 올라 있다. 반도체·조선·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에서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탁월한 CEO와 창업자들이 인구와 자원의 한계를 넘어 성장을 견인해 왔다. 뉴스투데이는 연중 심층기획 ‘신(新)인물탐구’를 통해 이들에 대한 경영학적 사례 분석을 시도한다. 본 기획은 다음 7가지 분석 축으로 인물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성장 경력: 경영 수업형 vs 외부 성취형 >> ② 경영 성과: 재무 성과 vs 구조 성과 >> ③ 경영 철학: 한우물 파기 vs 다각화 >> ④ 리더십 스타일: 지배형 vs 소통형 >> ⑤ 용인술(인재 철학): 성과 중심 vs 신뢰 중심 >>
⑥ 기업 문화: 조직 논리 vs 자율 문화
>> ⑦ 리스크 관리: 예방형 vs 복구형
2025년 4월 9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2025 LG 어워즈(LG Awards)’에서 구광모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출처=LG]
[뉴스투데이=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 들어서면, 조직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내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벽 한편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품도, 조직도 아니다. 사람이다.
LG어워즈 ‘명예의 전당’.
고객의 삶을 바꾼 구성원들의 이름이 그 자리에 남는다. 기업이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기록하는지에 따라 그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드러난다.
이 공간은 LG가 ‘성과의 총합’이 아닌 ‘가치의 흔적’을 기억하려 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고객가치 크리에이터’.. 이름을 바꾸자, 조직이 바뀌었다
이 장면은 하나의 선언이다. 구광모는 조직을 더 이상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 창출의 주체로 재정의했다. 구성원을 ‘직원’이 아닌 ‘고객가치 크리에이터’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호칭은 조직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행위이자, 구성원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까지 재구성하는 장치다.
그는 2025년 LG어워즈에서 “최우선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언제나 고객이다”라고 강조하며 이 방향성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이 문장은 전략적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조직문화에 대한 규정이었다.
‘고객가치 크리에이터’라는 명명은 구성원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동시에,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기준을 내면화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변화는 조직 운영의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KPI보다 고객 경험이 강조되고, 직무보다 역할 인식이 앞서며, 지시보다 판단 기준이 중요해진다.
과거에는 목표가 주어지고 그 달성 여부가 평가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고객 경험을 만들어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는 평가 방식의 변화라기보다, 조직 전체의 사고 구조를 바꾸는 변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통제가 사라진 것이라기보다 형태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통제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명령과 규칙이었다면, 현재의 통제는 내부에서 작동하는 기준과 정체성이다.
구성원은 더 이상 상사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고객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행동을 선택한다. 이는 통제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수준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축, 즉 KPI보다 고객 경험, 직무보다 역할 인식, 지시보다 판단 기준이 맞물리면서 LG의 조직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시를 기다리는 조직’에서 ‘기준을 스스로 해석하는 조직’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이 변화는 반복적인 메시지와 제도, 상징을 통해 서서히 축적된다. LG어워즈와 명예의 전당, 그리고 ‘고객가치 크리에이터’라는 호칭은 그 축적의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 자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된다
겉으로 보면 LG의 조직문화는 상당히 자율적으로 보인다. 구성원 각자가 판단하고 움직이며, 조직은 그 결과를 존중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자율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구광모 체제의 LG에서 자율은 ‘허용된 상태’가 아니다.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구조’다.
이 구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LG어워즈다. 2019년 시작된 이 제도는 단순한 포상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객가치를 실현한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조직 전체에 확산시키는 문화적 인프라로 기능한다.
2025년 기준 누적 492개 팀, 4,000여 명이 수상했다는 점은 이 제도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조직 전반에 깊이 침투한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이 숫자는 조직 구성원들이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문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심사 방식이다. LG어워즈는 내부 평가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고객이 직접 평가 과정에 참여한다. 이는 조직을 움직이는 기준을 내부 논리에서 외부 기준으로 전환하겠다는 명확한 선언이다.
조직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아닌, 실제 고객이 느끼는 경험과 가치가 평가의 중심이 된다. 이 순간 조직의 권력 구조는 미묘하게 이동한다. 상사가 아닌 고객이 평가자가 되고, 내부 기준이 아닌 외부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고객이 평가하는 구조 속에서 구성원은 외부의 기준에 노출되고, 동시에 그 성과가 조직 내부에서 인정과 보상으로 이어지면서 자부심과 동기부여가 강화된다.
실제 사례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명확히 드러난다. LG전자 ‘클린뷰 에어컨’은 고객이 오랫동안 느껴온 위생에 대한 불안과 사용상의 불편을 해소한 경험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제품 내부를 쉽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든 이 기능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고객의 심리적 불편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처럼 LG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고객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가’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구조는 조직 운영의 핵심 원리를 바꾼다. LG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고객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는 어떠한 모호함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철저히 열어둔다. 방법과 과정은 각 조직과 구성원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는 통제를 줄였다기보다, 통제의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기준은 강화하면서, 실행 과정에 대한 자율은 확대하는 구조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방향을 잃고, 자율성이 부족하면 새로운 시도가 억제된다. LG는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구조를 설계했다. 고객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그 기준을 실현하는 방식은 구성원에게 맡긴다.
더 나아가 구광모의 접근은 자율을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자율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평가, 보상, 상징, 조직 구조까지 모든 요소를 고객가치 중심으로 재설계함으로써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자율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결과로 나타난다.
LG의 자율은 방임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설계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결과다. 구성원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명확한 기준과 구조 속에서 방향을 잡고 있다.
자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구광모 체제의 LG는 바로 그 점을 조직문화로 구현하고 있다.
2025년 4월 9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2025 LG 어워즈’에서 구광모 회장(뒷줄 왼쪽 첫번째)이 고객 대표,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LG]
• 흩어진 자율을 묶다.. 협업이라는 또 다른 문화
자율은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분산을 낳는다.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전체도 잘될 것이라는 기대는 이론적으로는 성립하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깨진다. 개별 조직이 각자의 목표에 집중할수록 전체 최적과의 간극은 오히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광모는 이 지점에서 자율의 한계를 인식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협업’을 새로운 문화적 축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 협업은 협력이나 시너지 강조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를 ‘한 팀’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각 계열사가 독립된 조직으로 존재하되, 필요할 때는 하나의 팀처럼 작동하는 구조를 지향한 것이다.
이 변화는 실제 사업 구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LG는 AI 데이터센터, 전장사업 등에서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냉각 시스템, 전력 관리, 배터리 기술, 디스플레이, 통신 인프라 등 각기 다른 영역의 기술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된다. 과거에는 개별 제품과 기술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을 어떻게 통합해 하나의 가치로 제시하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이것은 협업이 아니라 조직문화의 재설계다. 개별 조직은 여전히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시장 요구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재구성된다. 이는 조직이 상황에 따라 연결되는 ‘플랫폼’처럼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협업이 내부에서 강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광모는 협업을 규율이나 지시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시장 환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유도했다.
완성차 업체는 이제 개별 부품보다는 통합된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단일 기술이 아니라 전력, 냉각, 운영까지 아우르는 전체 솔루션을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에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협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협업은 내부 명령이 아닌 외부 압력에서 시작된다. 이 방식은 조직 내부의 저항을 최소화한다. 협업이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문화 변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조직이 협업을 강조하면서도 실패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부 지시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LG의 경우 협업은 시장의 요구와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 내부에 자리잡는다.
LG는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외부 파트너를 대체하고, 더 빠르고 일관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구광모의 협업 전략은 자율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을 다시 묶어내는 방식이다. 각 조직이 가진 역량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협업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타난다.
자율이 흩어질 때 조직은 약해진다. 그러나 그 자율이 연결될 때 조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갖게 된다. LG는 지금 그 연결의 방식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LG CNS 부산 데이터센터 전경 [출처=LG CNS]
• 명확한 기준.. 통제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 조직
구광모 체제의 LG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율 조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강한 통제 중심 조직으로 규정하기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특징은 존재한다. 이 조직은 통제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성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과거 대기업 조직에서 성과는 관리의 결과였고, 조직은 통제를 통해 움직였다. 그러나 구광모 체제의 LG는 이 전통적인 논리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지금의 조직 논리는 지시와 관리가 아닌 기준과 설계에 기반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은 분명하게 제시되지만, 그 실행 방식은 조직과 개인에게 맡겨진다.
이 구조 위에 자율이 얹힌다. 그러나 이 자율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가 아니다. 고객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을 중심으로 모든 판단이 수렴된다. 이 점에서 LG의 자율은 방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구조는 본질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자율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조직은 분산되고, 각자의 판단이 충돌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조직 논리가 강해지면 유연성이 사라지고,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가 늦어진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두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상황에 따라 오가며 균형을 맞추려 한다.
관람객이 LG의 모빌리티 솔루션을 경험하고 있다. [출처=LG]
그러나 구광모의 접근은 다르다. 그는 이 균형을 완전히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긴장을 전제로 조직을 설계한다. 자율과 통제, 분산과 통합, 유연성과 일관성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구조를 만든다. 이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방식이라기보다,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을 함께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그 중심에는 고객이라는 단일 기준이 놓여 있다. 고객가치는 조직 전체를 묶는 공통 언어이자 판단 기준으로 기능한다.
각 조직은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그 방향은 고객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정렬된다. 협업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개별 조직의 자율성은 유지되지만,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따라 하나의 팀처럼 결합된다.
이러한 구조는 전략과 문화가 결합된 형태다. 방향은 전략이 설정하고, 실행은 문화가 담당한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가 바로 ‘기준’이다. 이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통제를 강화하지 않고도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직은 어디까지 정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맡겨야 하는가”.
이 질문은 모든 조직이 직면하는 오래된 문제이지만,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구광모는 이 질문에 대해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경계를 끊임없이 조정하고, 상황에 맞게 재설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LG는 지금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실험하고 있는 조직이다. 통제를 최소화하면서도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자율을 확대하면서도 조직 전체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실제 사례를 통해 해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LG 기업 문화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