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의 가치향상경영연구소장·칼빈대학교 대우교수
용인시 일대에 조성 중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둘러싸고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지방 이전론'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전북 새만금으로의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일부 주장들은 산업 현실을 외면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댄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 논란은 국가 전략산업의 방향성과 정책 신뢰성까지 흔드는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가 공식 지정한 핵심 전략사업이다. 정부 발표 이후 관련 행정 절차가 체계적으로 진행됐고, 대규모 민간 투자 역시 확정된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축이다. 이미 토지 보상과 분양 계약이 진행되고 공정이 상당 부분 진척된 상황에서 이전을 거론하는 것은 사업의 연속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공장 이전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수도권 반도체 생태계는 연구개발 인력, 협력업체 네트워크, 물류 인프라, 전력과 용수 공급 등 복합적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결과다. 이러한 기반을 무시한 채 특정 지역으로의 이전을 주장하는 것은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혼선은 곧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은 정책의 신뢰성 훼손이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결정한 사업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흔들린다면 어느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를 결단할 수 있겠는가. 기업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미 수조 원 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사업을 선거를 앞두고 재검토하자는 식의 접근은 기업에 불확실성만을 안겨줄 뿐이며, 이는 결국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역 균형 발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균형 발전은 기존 산업을 흔드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성과 경쟁력을 고려한 전략적 육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특정 산업을 정치적 명분으로 재배치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치는 방향을 제시하고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현실과 기업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미 결정된 국가 전략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일수록 더욱 신중한 언행이 요구되며, 단기적 이익을 위한 발언이 장기적 국가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가 아니라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책임 있는 정치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산업 정책이 흔들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 경제에 돌아갈 것이다. 더욱이 국제 정세는 녹록지 않다. 전쟁으로 인해 불안한 정세, 고환율, 그리고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경쟁과 관세 문제까지 겹쳐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산업 경쟁력 유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치적 이해와 계산이 국가 정책을 흔들고 민심을 혼란스럽게 하는 행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의 기강과 정책 신뢰를 훼손하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삶과 안위를 지켜야 하며, 기업은 원칙에 따른 산업 활동을 통해 국가의 부강에 기여해야 한다. 이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원칙이 흔들릴 때 국가의 미래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논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관점에서 깊이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강준의 가치향상경영연구소장·칼빈대학교 대우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