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기
한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시험 중 부당행위(Cheating)를 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벌을 면하기 위해 복잡하고 장황한 이유를 대며 실수와 착오를 부각한다. 요즘 선관위·정부·여당·청와대는 물론 경찰까지 이러한 행위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법을 위반한 불공정하고 부당한 행위로 판단돼 처벌 받기 전에는 무조건 실수와 착오라고 주장하는 것이 최근 여러 공적 기관의 새로운 트렌드로 유행하는 이유가 뭔지 의심스럽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국민의 헌법적 권한이 훼손된 것이 실수라고 주장하고, 부동산은 투기(投機)고 주식은 투자(投資)라며 지방선거를 노려 레버리지 ETF를 출시해 증시를 투전(投錢)판으로 만들어버린 여당과 정부기관들은 오류라고 얼버무리려 한다. “이재명표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은 부동산·환율·증시 등을 둘러싼 별의별 희한한 발언과 정책을 도입해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정부가 정답을 다 알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며 발뺌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살인사건에서의 증거 인멸도 부실수사일 뿐, 부정수사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뭔가 부당하거나 위법적인 행위로 의심되지만 이것이 실수와 착오에 의한 오해가 아님을 밝히고 입증하는 과정에는 사실관계 확인, 부정행위 과정의 구체화, 부정행위에 따른 처분 등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 험난한 과정 때문에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한 학생처럼 최근 여당의 국회활동이 장황하고 복잡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여당 김한규 의원 명의로 대표 발의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올 10월 2일로 예정된‘검찰청법’ 폐지와 ‘공소청법’ 및 ‘중대범죄수사청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폐기하고, 수사의 주체를 사법경찰관으로 일원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 법안에서는 동법 196조에 명시된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는 장황하고 복잡한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의 시선이 보완수사권에 쏠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 폐지되지 않은 검사의 보완수사권 덕분에 미성년자 성폭행과 살인으로 점철된 일명 “장윤기 살인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단순 살인으로 간주됐던 이 사건이 성폭행에 의한 살인으로 죄명이 변경된 이유는 검사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나흘 만에 전달한 장윤기 DNA 분석 보고서가 관련 재판 증거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실무상 과실로 인한 단순 누락이라 했지만, 이 사건 담당 팀장은 사건 직후 성폭행 관련 증거 인멸 혐의로 구속됐고, 경찰 간부인 그의 아버지는 형법에 명시된 친족 특례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각종 성폭행 증거물들을 폐기했음이 드러났다. 이들이 실수와 착오라 우기며 증거를 인멸한 이유는 일반 살인죄형량의 하한선이 징역 5년이지만 강간살인죄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기 때문이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수사준칙 59조 제3항에 의해 사실관계 미비(범죄사실의 구체성 및 입증 부족 등), 법리적 논란(구성요건 해석 및 위법성 조각사유 파악 등), 양형 결정(처벌 수위 결정을 위한 정보 부족 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사실관계 미비의 문제는 범죄가 성립하기 위한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증거 입증 과정이고, 법리적 문제는 범죄 구성요건 해석의 문제 즉, 해당 행위가 특정 범죄의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에 대한 이견 여부와 위법성조각 또는 책임 조각 사유 여부에 따른 죄명의 변경 등과 관련 있다. 이 과정을 거쳐 기소 여부가 확정된다 해도 형량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 즉 피해정도와 합의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검사는 보완수사를 요구해왔다.
이번에 발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는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면서 이를 다시 보완한다며 여러 조항에 걸쳐 복잡하고 장황한 제·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보완수사의 기간, 대상, 범위 등을 한정해 사실상 보완수사권을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보완 수사 자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경찰이 깔끔하게 사건을 정리한 것처럼 처리하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면 “장윤기 사건”처럼 수사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달라진 법조항을 들이댈 것 같다. 이를 통해 경찰은 물론 여당·정부·청와대·선관위까지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를 인멸·누락하는 행위가 있어도 이를 부도덕하고, 불공정하며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아차” 하는 실수로 간주되는 사회 풍토가 만들어질 것 같아 우울하다.
선관위는 투표지 부족을 실수라 하고, 정부와 청와대는 투기판 주식 시장을 정책 착오라 하며, 경찰은 증거인멸을 부실 수사라 우기고 있다. 그리고 여당은 각종 부정과 불법 행위를 실수와 착오로 만들어버리는 복잡하고 장황한 설명을 곁들인 그래서 기괴하기까지 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가 우리 모두를 악(惡)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만, 그것이 왜 사악(邪惡)하고 부도덕하며 비윤리적인지 언론을 포함해 누구도 입증은커녕 지적도 할 수 없는 한국 사회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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