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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요칼럼] 패장에 대한 예우는 지혜로운 문명적 해법이다

트로이 전쟁의 승패를 쥔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는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전쟁 포로의 반환 및 명예를 건 자존심 싸움 끝에 참전을 거부한다. 자신이 전쟁에서 거둔 전리품이자 명예의 상징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분노 때문이었다.

[수요칼럼] 패장에 대한 예우는 지혜로운 문명적 해법이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트로이 전쟁의 승패를 쥔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는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전쟁 포로의 반환 및 명예를 건 자존심 싸움 끝에 참전을 거부한다. 자신이 전쟁에서 거둔 전리품이자 명예의 상징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분노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이탈하자 트로이아의 용맹한 왕자 헥토르가 맹활약하며 그리스 진영을 턱밑까지 밀어붙인다. 배에 불이 붙는 등 패배 직전에 몰리자, 아킬레우스의 소중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빌려 입고 참전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적들을 공포에 떨게 하지만, 결국 아폴론의 가호를 받은 헥토르의 손에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진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이성을 잃었다. 슬픔과 복수심에 눈이 먼 그는 아가멤논과 불화를 접고 전장에 복귀해 헥토르를 처단한다. 하지만 광기 어린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자신의 전차 뒤에 묶은 채 트로이 성벽 주위를 짓밟듯 끌고 다니며 적장의 시신을 욕보이는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신화적 비극은 단순히 한 영웅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비록 철저히 짓밟아야 할 원수라 할지라도 목숨이 다한 시신을 거두어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신들에 대한 중대한 의무이자 결코 넘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금기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우와 자비를 저버린 아킬레우스의 행위는 결국 올림포스 신들의 거센 분노를 샀다. 이 비정한 대치 국면은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남몰래 홀로 적진에 찾아오면서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왕국의 운명이 풍비박산이 날 절망 속에서 프리아모스는 자식을 죽인 원수의 발을 붙잡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 순간 프리아모스의 굽힌 무릎과 흐느낌 속에서 아킬레우스는 늙은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린다. 이어 자신이 휘두른 폭력이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파괴했음을 깨닫는다.

비로소 아킬레우스는 눈앞의 적이기 이전에 자신과 똑같이 고통받는 한 명의 인간을 보게 되고, 잃어버렸던 눈물과 인간성을 되찾는다. 적장의 시신을 돌려주며 두 영웅이 함께 얽혀 눈물 흘리는 이 극적인 화해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복수는 한순간의 통쾌함을 줄지언정, 인간성을 상실하는 순간 결국 승자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준엄한 경고이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훗날 트로이 성문 앞에서 패장에 대한 자비를 완전히 거두고 신성한 금기를 범했던 그 오만의 대가를 치른다. 트로이의 함락 직전 아킬레우스는 아폴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쏜 독화살이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명중하면서, 천하의 영웅도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이 오래된 신화적 성찰은 오늘날 전쟁과 법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관통한다. 인류 역사상 군사 문화와 현대 국제법이 적의 시신 훼손과 무력화된 적에 대한 모욕을 엄격히 금지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잃거나 패배한 순간, 그는 더 이상 공격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패장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명예를 보장하는 것은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로 나아가는 절대적인 필수 조건이다. 반대로 패장을 잔인하게 모욕하고 짓밟으면 상대 진영의 복수심만 극대화되어 폭력의 연쇄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패배한 상대에 대한 포용과 예우는 비단 전쟁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적 관점에서도 이는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와 품격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척도가 된다. 물론 정치적 패배와 과오에 대해 법적·제도적 책임을 엄정하게 묻고 청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절차이다. 그러나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인격 말살이나 잔인한 모욕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생사를 가르는 전쟁과 다르다. 언제든 '내일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는 상대를 대하는 유연한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패배한 정치 지도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최소한의 제도적 틀 안에서 예우하는 것은 보복의 정치가 일상화되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승자가 패장을 가혹하게 짓밟고 조롱하는 사회는 결국 끝없는 갈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 파국의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 전체의 몫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처럼 적이나 패장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는 단순한 감상적인 도덕적 당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파국적인 갈등을 종식시키고 상처 입은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문명적 해법이다. 결국 문명의 수준은 승자가 패장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패장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을 베풀 수 있는 승자만이 비로소 자신의 승리마저 인간적인 것으로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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