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모 유한대 교무처장.
전문대학,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2024년 기준 전국 전문대학 입학자원은 10년 전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 수도권 대학조차 학과 간 양극화와 비인기 전공 위축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동시에 산업 현장은 인공지능(AI)·첨단 기술을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무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학령인구 절벽과 기술 전환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밀려오는 지금, 전문대학은 ‘열린 평생·직업교육 전문대학’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열린 평생·직업교육 전문대학’이란 학습의 대상과 시간, 형태, 방식을 개방해 전문대학이 지역사회와 산업체를 연결하는 허브로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모든 학습자에게 열려야 한다. 전통적으로 대학 교육은 18~22세 정규 학생을 대상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는 이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재직자, 경력 단절 여성, 외국인 유학생, 중장년 재교육 수요자까지 지금 전문대학의 문은 이들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가? 마이크로디그리(Micro-degree), 모듈형 교육과정, 집중 이수제 등 유연한 학사 제도의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비학위(단기) 과정과 정규 학위 과정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재직자가 야간이나 주말에 이수한 단기 직무 과정, 나아가 산업 현장에서의 경력이 선행학습경험인정(RPL)을 통해 정규 학점으로 환산되고, 이것이 마이크로디그리와 학위 취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다리’가 구축돼야 한다.
둘째, 산업에게 열려야 한다.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이 산업 수요를 반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년이다. 그러나 AI,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산업의 기술 사이클은 6개월~1년 단위로 변화한다. 대학이 정규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속도보다 산업이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적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해법은 산업체를 교육과정 설계의 공동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학위를 따야만 현장에 나갈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기업이 요구하는 핵심 기술만 3~6개월 단위로 압축해 가르치는 단기 집중형 실무 트랙을 정규 학사와 병행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전문대학이 AI 시대에 살아남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셋째, 지역에게 열려야 한다. 2025년 본격 가동된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는 전문대학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다. 지자체와의 협약, 지역 기업과의 인력 양성 MOU, 지역 주민 대상 평생교육 등 전문대학이 캠퍼스의 담장을 허물고 지역 속으로 들어갈 때, 대학은 비로소 지역 불가결한 기관이 된다. 특히 전문대학의 경우, 인근 중소기업 밀집 지역과 연계한 지역 기술 인재 클러스터 구축이 유효한 전략이다. 캠퍼스와 산업현장의 경계를 없애는 것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지역 정주’다. 전문대학이 지역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공급하고, 그 인재가 지역에 머물며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선순환 생태계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러나 경직된 학사 규정, 교원 인사 제도, 재정 지원 구조 등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규제 혁신과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열린 평생·직업교육 전문대학을 국가 정책 아젠다로 공식화하고, 유연 학사, 모듈형 교육과정, 산학 일체형 운영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혁신을 원하는 대학에게 도전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전문대학에 대한 평가는 페이퍼워크 중심의 획일적 정량 지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사회와 산업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성인학습자의 직무 전환과 청년의 지역 정주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는지를 묻는 ‘실질적 성과’ 중심의 평가로 전환돼야 한다. 그래야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개방의 길’을 선택한 혁신 전문대학들이 생존을 넘어 지역의 미래를 견인할 수 있다.
결국 열린 학습자, 산업, 지역을 향해 구조를 개방할 때 전문대학은 단순 교육기관을 넘어 평생·직업교육 플랫폼이자 지역 혁신 거점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이지만 동시에 전문대학의 역할을 재정의할 기회이며, 열린 전문대학은 그 변화의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해법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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