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생성 이미지. 황재선 기자.
산·학·연·병 등 협업이 필수적인 바이오 산업은 수도권 집중도가 높다. 수도권에 바이오 기업이 밀집하면서 협업 체계 구축에 유리한 환경이 형성됐지만, 역설적으로 투자 유치와 지원사업 선정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부동산과 설비 비용, 고급 인력 유치 부담까지 겹치며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적잖다.
마침 이재명 정부는 R&D 지역 균형 발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K-R&D 이니셔티브를 슬로건으로 ‘2026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발표했는데, R&D 예산은 총 35조5000억원 규모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핵심키워드는 '지역 균형 발전'과 'AI+바이오 초격차'였다. 이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등 유관 부처들도 세부적인 바이오 R&D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역 지원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예산 배분과 투자 구조, 평가 가점까지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에 '지역별 차등 지원' 카드를 꺼내 들면서, 수도권에 밀집됐던 기업 거점이 전국으로 분산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중기부는 이 가운데 '지역성장펀드' 운영과 'TIPS(민관협력 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지역쿼터'를 통한 기업 투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공표했다. 바이오 분야에 한정된 사업은 아니지만, 주요 지원 분야인 딥테크에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포함되는 만큼 직접적 수혜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역 투자·R&D·인프라까지… 바이오에 유리한 구조 변화
출처=중기부 2026년 팁스(TIPS) 창업기업지원계획 공고
중기부는 작년 12월 22일 세종 청사에서 비수도권 14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간담회를 개최하고,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의 중점 과제인 지역성장펀드의 향후 5년간 운영방향을 공유했다.
지역성장펀드는 모태펀드를 마중물로 지역사회, 민간 등이 함께 출자하는 지역 벤처모펀드(Fund of Venture Funds)로써 지역에 중점 투자하는 자펀드에 출자한다. 향후 5년간 모펀드 2조원, 자펀드 3조5000억원을 조성하고, 비수도권 14개 광역 지자체마다 최소 1개 이상의 모펀드를 신설할 계획이다.
중기부는 지난 1월 23일 1차 모집 공고를 발표했으며, 딥테크 분야와 AI 분야 비수도권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방정부, 지역사회, 민간 등이 함께 지역에 중점 투자하는 지역성장펀드를 모펀드 4000억원, 자펀드 7000억원 규모로 할당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기부 일반 모태 자펀드에 지역투자 20%가 의무화되고, 추가 지역투자 의무 제안 펀드가 반영된 결과다.
중기부는 지역성장펀드를 통해 비수도권 최초로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목표다. 김봉덕 벤처정책관은 지방자치단체 간담회 당시 "벤처생태계의 지역균형과 지역 최초의 유니콘 육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 하에 지역성장펀드의 세부구조를 설계 중"이라면서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 벤처 역량을 비수도권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점에 쿼터까지… 지방 거점 기업에 쏠리는 지원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R&D 지원사업 신규과제 예산의 50% 이상을 지역 기업에게 할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중기부 유튜브 영상.
지역 쿼터제로 운영되는 팁스도 지방을 거점으로 하거나 이전을 계획하는 기업들에게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중기부는 최근 중소기업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2조1959억원으로 편성했으며, 이 중 팁스 사업에 1624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지원한도는 일반트랙의 경우 최대 8억원(24개월간), 딥테크트랙은 최대 15억원(36개월간)이다.
일반트랙은 팁스 운영사로부터 투자와 추천을 받은 (예비)창업기업이 대상이다. 창업기업이 비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제외)에 소재할 경우 최소 1억원 이상의 투자가 제공된다. 딥테크트랙은 일반트랙 최종평가에서 '완료' 판정을 받은 '12대 신산업 분야' 창업기업이 해당하며, AI와 신약, 헬스케어 산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일반트랙은 본사(본점)가 비수도권에 있을 경우 선정 평가에서 최대 3점, 공장의 경우 2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딥테크트랙은 본사와 공장이 비수도권에 위치할 경우 각 2점의 가점이 부여된다.
이처럼 정부는 지역 기업에 가점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R&D 투자 예산도 비수도권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기부는 "R&D 신규 과제 선정에 있어 50% 이상의 예산을 지역 기업에 지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인천(송도) – 바이오의약품 생산 거점 △충청(오송) – 제조 공정 혁신 △대구·경북 – 합성신약 및 의료기기 △부산·경남 – 디지털 헬스 및 의생명 △광주·전남 – 면역치료 및 백신 △강원 – AI 항체 신약 △전북 – 그린 바이오 및 소재 △제주 – 천연물 및 맞춤형 의료 등 전국 8개 특구 대상 규제특례 실증 R&D 및 인프라를 지원하는 등 지역 전용 R&D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와 과기부는 '지역거점 AX(AI 전환) 혁신 기술개발 사업’을 앞세워 비수도권 R&D 지원에 나선다. 이 사업은 수도권을 제외한 100% 비수도권 배정을 원칙으로 지역 거점 병원과 기업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지원한다. 2026년 기준 약 51억원이 배정됐으며, 최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확정되면서 향후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원 분야는 AI 기반 실시간 암 진단, 퇴행성 뇌질환 예측 등 병원 데이터와 기업 AI 기술의 결합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정책은 '돈'을 풀었지만 기업은 '사람'을 묻는다
화순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 출처=화순군청
정부가 강한 수준의 R&D 지역 차등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실제로 지역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회사 거점 이전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현재 전남 화순 클러스터에 입주해 있는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최근 정부와 민간 펀드의 R&D 투자지원금이 지방으로 상당 비율 배정되면서 수도권 기업들이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며 "본점 소재지와 연구소를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입주해 있는 지역 특구에 사무실 임대가 가능한 공실이 있는지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변화가 실제 기업들의 거점 검토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전 결정이 곧바로 정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지방 근무를 선택할 인력 수급 문제가 함께 풀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바이오 분야는 타 산업보다 고급 인력이 필요한 산업인 만큼 지방 기업의 최우선 과제는 인력 수급"이라며 "회사가 정부 과제를 수주하려면 지원 금액에 따른 필수 고용 조건도 충족해야 하는 만큼 사람을 확보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도 임대아파트나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지자체 지원이 있지만, 여기에 더해 지방 근무자의 소득세 감면 등 추가 지원이 이어진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인력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지역 중심 R&D 지원 기조가 예산과 평가, 투자 구조로 구체화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지방 이전 검토도 점차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수도권 쏠림 완화가 일시적 이전 수요에 그칠지, 실제 지역 정착과 산업 생태계 확산으로 이어질지는 결국 인력 확보와 정주 여건 보완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