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한 벌 값이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시대, 결혼식 비용 전체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현실 속에서 '웨딩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그재그에 따르면 2026년 봄 웨딩 시즌을 앞두고 셀프웨딩 관련 상품 거래액이 전년 대비 최대 약 19배 증가했을 만큼, 합리적인 웨딩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20년 경력의 의류 디자이너가 직접 패턴을 잡고, 직접 봉제하며, 20~30만 원대의 웨딩드레스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HB컴퍼니의 웨딩 브랜드 '데이모먼트(Daymoment)' 이야기다.
데이모먼트를 이끄는 연수빈 대표는 유라고, 29CM 입점 브랜드 등에서 실장급으로 20년 넘게 활동해 온 베테랑 디자이너다. 트렌드를 만들고 매출을 견인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정년 없이 계속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만족하던 성격 탓에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HB컴퍼니를 2021년 12월에 설립했지만 본격적인 런칭은 2025년 6월이었다.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수많은 의류 카테고리를 검토한 끝에 웨딩드레스라는 답을 찾았다. 대표는 "웨딩드레스는 가장 특별해야 할 옷인데, 가장 비합리적인 구조를 가진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한 번 입는 옷임에도 지나치게 비싸고, 선택 기준이 디자인이 아닌 패키지 중심이며, 신부 본인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노웨딩 트렌드와 함께 이 시장이 반드시 변해야 할 틈새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진 = 데이모먼트
'데이모먼트(Daymoment)'라는 이름은 Day(하루)와 Moment(순간)의 결합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순간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슬로건 "Wear Your Story, Live the Moment"는 고객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입고, 어떤 순간을 살고 싶은가. 대표는 데이모먼트를 단순히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의 하루를 '기억되는 순간'으로 바꾸는 브랜드로 정의한다.
기존 웨딩드레스 시장은 100만 원 이상이 기본이다. 유통, 대여, 패키지, 마진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옷 자체의 가치보다 가격이 훨씬 비대해지는 구조다. 데이모먼트는 이 구조 자체를 단순화했다.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패턴을 잡고, 직접 샘플링하며, 100% 국내 생산 체계를 유지한다. 중간 비용이 사라지니 옷의 완성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수빈 대표는 지금도 샘플을 직접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디자인은 그린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입어봐야 완성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패턴을 직접 잡으면 착용감이 달라지고 실루엣이 안정되며 원단의 쓰임이 정확해진다. 이 과정은 외주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과적으로 20~30만 원대라는 합리적 가격에 100% 메이드 인 코리아의 품질을 갖춘 웨딩드레스가 탄생했다.
글로벌 웨딩드레스 시장은 2025년 약 40억 4천만 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6.5% 성장이 전망된다. 한편 국내에서는 2025년 혼인 건수가 약 24만 건으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결혼 비용 상승으로 인해 실속형 웨딩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스몰웨딩과 셀프웨딩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개인화된 웨딩 경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연수빈 대표는 “가격을 낮춘 게 아니라 구조를 바꿨습니다” 트렌드는 기회가 아니라 필연 이었습니다. 저는 가격을 낮춘 게 아니라,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던 구조를 제거했습니다. 기존 웨딩 시장은 유통, 대여, 패키지, 마진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옷 자체의 가치보다 가격이 훨씬 커지는 구조입니다. 데이모먼트는 이걸 단순화했습니다 라고 전했다.
데이모먼트는 자사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와디즈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전략을 택했다. 대형 플랫폼은 유입이 빠르고 확장성이 크지만, 그 구조 안에서 브랜드가 하나의 '상품'으로 평준화되는 한계가 있다. 자사몰은 브랜드의 세계관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며, 웨딩이라는 카테고리는 충동 구매가 아닌 의미 기반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시장이기에 유입의 양보다 이해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대표의 판단이다.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신제품 검증도 병행하고 있다. 펀딩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인사이트는 '사람들은 제품이 아니라 이유에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왜 만들게 됐는지, 왜 이 가격인지, 왜 이 디자인인지 — 그 '왜'가 명확할수록 전환율이 올라갔다. 대형 플랫폼의 높은 수수료는 결국 소비자가 상승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D2C 방식이 최선이라는 확신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모먼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웨딩드레스를 선택하지 못하는 예비 신부에게 드레스를 무료로 대여하는 공익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특정 사연을 가진 예비 신부를 선정하고, 드레스 제공 및 촬영을 지원한 뒤 기록 콘텐츠로 남기는 지속 가능한 형태의 사회공헌이다. 대표는 이것이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진 = 데이모먼트 연수빈 대표
향후 1~2년 내 세 가지 목표에 집중할 계획이다. 첫째, 웨딩에 국한되지 않는 '모먼트 웨어'로의 확장이다. 스냅촬영, 기념일, 여행, 일상 속 특별한 날까지 사람들의 순간에 함께하는 옷을 지향한다. 둘째, D2C 기반 브랜딩 완성도 강화다. 자사몰과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이해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를 더 정교하게 설계할 예정이다. 셋째, 공익 프로젝트의 실제 실행이다.
HB컴퍼니는 웨딩 브랜드 데이모먼트 외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플로우(Offlow)'도 운영한다. '쉼의 흐름'이라는 슬로건 아래, 바쁜 일상 속 휴식과 여유를 제안하는 브랜드다. 두 브랜드는 지속 가능성을 지향한다는 점,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쌓아온 원단·봉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상에 필요한 아이템을 감도 높은 스토리와 실용성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방향성을 공유한다.
1인 브랜드로서 디자인, 생산, CS, 마케팅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 감당하는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표는 속도와 완성도 사이에서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지금 이 선택이 브랜드를 쌓는가, 소비시키는가.'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보다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가 훨씬 어렵다고 말하는 연수빈 디자이너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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