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가 근대사회를 만들었듯, AI는 계몽주의 2.0를 만들고 있다
[용환승 칼럼] 지구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는 디지털 기술
세계는 언어와 문화, 종교만 다른 것이 아니다. 전기의 전압과 콘센트 모양, 운전석의 위치, 도량형처럼 소소한 것들도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얼마 전만 해도 휴대폰 충전기와 통신 방식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별도의 충전 케이블을 챙겨야 했다.
그나마 아라비아 숫자가 공통으로 쓰이는 덕분에 물건 가격정도는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터넷, 그리고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세계를 하나의 단일 문화권으로 빠르게 수렴시키고 있다.
70억 인구가 하나의 컴퓨팅 시스템에 동시에 접속하더라도 끊기지 않고 실시간으로 서비스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랍다.
BTS의 월드투어, 가수 싸이의 글로벌 돌풍,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 동시 흥행이 그 증거다.
바벨탑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가 일꾼들의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 오랜 장벽이 지금 허물어지고 있다.
동일한 콘텐츠에 각기 다른 언어로 댓글을 달아도 AI가 즉시 번역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 통화를 하며 실시간 통역까지 가능해진 지금,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안경 하나만 있으면 어느 나라 사람과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물리적 통합을 논리적 통합으로 만드는 AI
인터넷은 원격으로 세계를 연결했지만 통역없이 외국인과 마주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물리적으로 만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 자유로이 대화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만남이 되는 것이다.
AI가 제공해 주는 통번역 기능은 수천년 유지해오던 언어장벽을 해결해서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논리적 통합을 만들어주고 있다.
언어 못지않게 높은 것은 문화 장벽이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크고 작은 갈등과 심지어 전쟁까지 불어온다.
AI는 언어 장벽을 허무는 것을 넘어, 이해가 어려운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설명과 함께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방향으로 세계를 단일 문화권에 가깝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 지식과 상식의 표준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 나라를 여행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권을 이해하는 일로, AI는 그 거대한 일을 서서히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AI는 업무 처리에 있어서 초음속 여객기이자 고속철도
2026년 6월 GTX-A 전노선이 개통될 예정이다. 운정에서 서울역까지 29분, 서울역에서 수서까지 10분이면 닿는다.
시내를 시속 180km로 관통하는 이 노선은 운정신도시와 동탄을 서울의 일상적 출퇴근권으로 편입시켰고,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경계를 한층 넓혔다.
속도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핵심동력의 하나이다. 마하 5의 속도로 베이징과 뉴욕을 2시간 만에 잇는 초음속 항공기가 개발 중이라 한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된다면,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뉴욕에서 점심을, 런던에서 저녁을 먹은 뒤 귀국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멀고 먼 중남미나 아프리카까지 고속철도로 여행하는 날도 언젠가 실현될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1MB짜리 사진 한 장을 내려받는 데도 수십 초가 걸려 겨우 텍스트만 주고 받던 시절이 있었다.
광통신의 등장으로 오늘날 100Gbps의 속도가 가능해지면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생겨났다.
무선 통신도 LTE에서 5G로, 다시 6G로 진화하고 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연 시간이 0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지연이 사라지면 원격 로봇 수술이나 자동차 원격 운전이 가능해져서 발레파킹조차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고 원격 운전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빠른 속도는 또 다른 지능의 한 특성
IQ시험에서는 누구나 시간을 주면 다 풀 수 있는 문제지만 누가 더 빠르게 풀어내는 가도 평가지표가 된다.
즉 문제를 푸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해서 지능의 한 척도가 된다.
오늘날 컴퓨터와 AI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처리속도 때문에 사람을 대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압도적인 속도를 가진 AI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고,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발표자료를 만드는 등 모든 일상적 업무의 생산성을 100배 이상 끌어올린다.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상당 부분 대신해서 예전에 10~100명의 개발자가 처리하던 일을 AI 일꾼 하나면 모두 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HBM3, HBM3e, HBM4의 메모리 대역폭이 각각 819, 1229, 2048GB/s에 달한다.
AI가 학습하고 서비스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양이 워낙 방대해 이 속도로도 시간이 걸리고 전력소모도 크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다행히 이 HBM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으며, 수요 증가에 따라 관련 실적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인간은 불안해진다
봄이 되어 벚꽃이 피었나 싶어 찾아가려 하면 이미 져있다.
퇴직하고 나서 이제라도 유행따라 살아 볼까 하지만, 유행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철지난 유행일 뿐이다.
2026년 1월에 유행하던 두쫀쿠도 어느새 버터떡으로 바뀌었다. 제철 과일은 더 빠르다.
딸기가 한창인가 했더니 어느새 토마토가 나오며 4월인 지금 겨울 방어는 끝물이고 봄도다리가 오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리듬을 타야 하듯, 세상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한다.
주식 투자에서 차트의 흐름을 읽는 감각이 성패를 가르듯,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흐름을 타는 데 AI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I는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심각한 위험도 내포한다.
최근에 발표된 클로드 미토스(claude mythos) AI는 소프트웨어를 생성하고 실행하며 오류까지 스스로 수정하는 AI는, 보안 취약점을 찾아낼 뿐 아니라 그것을 파고드는 코드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침투, 정보 탈취, 흔적 삭제까지 전 과정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한다면, 공격을 당한 시스템이 이상을 감지하는 순간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양면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탈근대사회에서 초현대사회로 이끄는 AI와 계몽주의 2.0
계몽주의는 17세기에 시작되어 중세를 넘어 세계를 근대사회로 이끌었다.
왕과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인권, 과학의 발전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를 변혁했다.
"세상에는 정답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가 싹텄다.
과학은 진보와 파괴라는 두 얼굴을 드러냈고, 대중사회의 불안과 복잡성이 커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진리보다 해석을 중시하며, 기존의 거대 서사를 해체하는 사유 방식이다.
"정답이 있는 것 같지만, 확신할 수 없다"는 감각이 그 시대를 관통했다.
오늘날 논의되는 초현대주의(meta modernism)는 해체된 가치들을 다시 재구성하고 생성하는 새로운 단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디지털 기술과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새로운 거대 서사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계몽주의의 정신이 디지털 시대에 다시 소환되어 계몽주의 2.0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편,, 이같은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진 채 여전히 왕과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들이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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