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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의 눈] 넥스트 블루칩, 김환기와 이우환을 넘어...

화면 한가운데에서 주먹을 꽉 쥔 남성이 마치 연재만화의 한 장면처럼 초현실적이고 광기 어린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즈 잇 월스 잇(Is it Worth It)?'은 2022년 11월 홍콩 크리스티 포스트 밀레니엄 이브닝 세일에서 378만...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의 눈] 넥스트 블루칩, 김환기와 이우환을 넘어...

김민채 서울옥션 경매기획운영팀 스페셜리스트. 사진=서울옥션

시장을 들여다보며 이머징을 찾는 일은 늘 흥미롭다. 미지의 영역에 안목을 베팅하고 그 도전이 독자적인 장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원석이 거목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기대감은 달콤하지만, 그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로 증명되는 과정은 냉혹하다.

거장의 작품이 비싼 이유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충족해서가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를 정밀하게 조준하거나, 그 시대를 먼저 앞서나가며 냉혹한 평단과 뮤지엄, 그리고 두터운 컬렉터 층의 검증을 수십 년간 견뎌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소위, 시장의 변동성이나 정세의 위기 속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 견고한 펀더멘탈이 존재한다.

반면 유망주의 신고가는 미술사적 검증이 끝나기 전에 기대감이 먼저 폭발해서 만든 숫자일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을 버텨내며 완성돼가는 거장의 끝부분을 목격하고 있지만, 동시대 유망주들의 수십 년 뒤 미래를 인간의 눈으로 온전히 예측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 곁에도 글로벌 블루칩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해 나가는 유망주들이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화이트 큐브의 신예였던 이목하, 안나박과 같은 이들이 이제는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조지 콘도 같은 거장들의 작품 옆에서도 응찰 경쟁을 끌어낸다. 특히 안나박이 기록한 6억 원대의 낙찰가는 웬만한 중견 작가의 평생 경력을 단숨에 뛰어넘는 수치로, 시장이 이들의 미래 가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시장은 이들에게서 어떤 펀더멘탈의 단서를 본 걸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국내 미술대학 학생들의 최대 페어인 아시아프에서 최고상을 받은 이후 2023년 아트 바젤 홍콩의 디스커버리즈 섹션 발탁, 지난해 아트시 뱅가드 선정 및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서 작품 공개, 그리고 올해 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 선정까지 이목하가 쌓아온 커리어는 빈틈이 없다.

이 빽빽한 이력서에 강한 추진력을 불어넣은 순간을 하나 꼽자면, 2024년 11월에 열렸던 홍콩 필립스 이브닝 세일일 것이다. 출품작 ‘아임 낫 라이크 미(I’m Not Like Me)’(2020)가 추정가의 약 4배인 165만 1000 홍콩달러(약 2억 9800만 원)에 낙찰되며 글로벌 미술 시장에 데뷔한다. 신예 작가에게는 이력을 한 줄 쌓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커리어의 기세를 이어가며 시장에서 자신의 가격을 받아내는 것은 난도가 훨씬 높다. 그러나 이목하는 주목성과 시장성이라는 두 가지 동력을 동시에 쥐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나박 또한 만만치 않다. 아홉 살에 이주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 전체에서 받은 대상을 시작으로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재학 시절엔 1학년 전체 파이널 평가 1위라는 성적표를 얻는다. 이후 뉴욕 예술 아카데미 시절 참여한 학생 단체전에서 카우스의 샤라웃을 받으며 미술계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가 하면, 빌리 아일리시가 소장한 그의 작품은 앨범 특별판 커버로 등장하며 대중적 인지도까지 거머쥔다.

이쯤 되면 최연소 리만머핀 소속 작가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수순에 가깝다. 안나박의 트렌디한 행보만큼이나 시장이 그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파격적이었다. 화면 한가운데에서 주먹을 꽉 쥔 남성이 마치 연재만화의 한 장면처럼 초현실적이고 광기 어린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즈 잇 월스 잇(Is it Worth It)?’은 2022년 11월 홍콩 크리스티 포스트 밀레니엄 이브닝 세일에서 378만 홍콩달러(약 6억 4000만 원)에 낙찰됐다. 작품이 뿜어내는 기괴하고 압도적인 에너지와 글로벌 컬렉터들의 열광이 고스란히 싱크로나이즈된 순간이었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이목하, ‘웃음잃은 종달새’. Oil on cotton, 30.3x30.3cm. 2019. 사진=서울옥션

그렇다면 이처럼 눈부신 유망주가 한여름의 신기루로 사라지지 않고 포스트 김환기, 이우환의 반열에 안착하는 데 필요한 진짜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단연 압도적인 시각적 독창성이다. 어떤 의미로든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기만의 확실한 스타일이 증명돼야 한다. 예술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각 언어이기에 어떠한 설명이나 개념이 없어도 비주얼 그 자체로 작동해야 한다.

여기서 비주얼이란 눈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나 일시적인 화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시각성도 자체로서 하나의 미학임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진짜 미학(Aesthetics)은 엄격한 기본기라는 토대 위에서, ‘규율’과 ‘자율성’이라는 모순된 무게추를 양어깨에 지고 새로움을 보여줄 때 생성된다. 붓질 하나, 레이어 한 겹의 디테일 속에서도 작가만의 치열한 연구와 고유한 기법이 다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피카소의 해체주의도, 레이놀즈의 고전주의도 결국 치밀한 기본기가 있었기에 역사에 남았다. 기초가 생략된 파격은 가볍고, 기본기 위에서 터진 새로움은 묵직하다. 세련미는 역설적이게도 캔버스 앞을 묵묵히 지키는 화가의 둔중한 태도에서 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묵직함을 잊지 않고 지속하는 작가의 자세를, 누구보다 빨리 포착하는 선구안이 필요하다.

또한 세련됨이 하나의 클래식으로 남으려면 이면을 지탱하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작가 고유의 철학이 소거된 비주얼은 결국 유통기한이 짧은 장식품이 될 확률이 다분하다. 머리를 싸맬 정도로 난해한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이론이 늘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세계를 관통할 고유의 이론과 치밀한 연구는 반드시 수반돼 있어야 한다.

이목하의 작업은 이 지점을 영민하게 다룬다. SNS라는 가상 공간에서 인물을 포착하는 그의 방식은 단순한 소재주의가 아니다. 디지털 화면 너머의 유령 같은 오늘날의 인간상이 작가 특유의 번지는 화풍과 만나 ‘동시대의 초상’이라는 울림 잇는 콘셉트를 획득했다. 결국 세련된 비주얼은 치열한 인물 연구라는 본질에서 터져 나온 셈이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을 바탕으로 어느 갤러리스트의 눈에 띄어 전속 작가로서 활동을 지속하고, 어떤 뮤지엄이나 재단에서 전시를 이어 나가는지는 작가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한 작가가 10년 동안 작업 활동을 지속한다고 가정할 때, 현대의 화단에서 단순히 커리큘럼 베이트를 늘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이목하, ‘크로마키 블루’. Oil on cotton, 194x130.3cm. 2022. 사진=서울옥션

그러나 평생을 작가로 살기로 다짐했다면 결국 선택의 순간이 온다. 생존을 위한 전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먼 훗날 메트로폴리탄 같은 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겠다는 배짱과 청사진을 품어야 한다. 수많은 제안 중 어느 전시가 자신의 작업 세계를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인가를 작가 스스로가 냉정하게 판단하고 조율해 나가는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장들 역시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검증을 거쳐 대중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제 발자국을 영리하게 관리하는 작가가 다음 세대의 블루칩이 될 확률이 높다.

셋째는 바뀐 패러다임과 네트워크의 흐름을 쫓는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미술계가 소수의 폐쇄적인 기관과 집단이 정보를 독점하던 견고한 이너서클이었다면, 오늘날의 화단은 다른 문법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 중심에는 SNS가 있다. 이제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어떤 인플루언서와 무브먼트를 이끄는 컬렉터들이 특정 작가의 작품을 소유하고 지지하는지 이전보다 훨씬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다. 예술을 수집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가 어떤 집단과 취향을 공유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따라서 기존의 낡은 정보에만 편승할 것이 아니라, 국내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인 컬렉터 집단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그 궤적을 스스로 포착해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유망주를 어렵사리 발굴해서 진정으로 품기로 했다면 이제는 컬렉터를 넘어 하나의 후원자(Patron)가 되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예술을 지지하고 작가를 키워내는 방식이 꼭 거액을 들인 소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컬렉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소지가 아니라 작가의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강력한 신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속 작가의 커리어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갤러리 입장에서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플리퍼(Flipper)들을 질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플리퍼들이 시장에 한 번씩 등장할 때 2차 시장의 가격이 역동적으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1차 시장이 호언장담한 작가의 잠재력은 결국 2차 시장의 리세일을 거쳐야 가치를 입증한다.

낙관적 잠재성은 실제 거래가 성립할 때 비로소 시장가치로 환산되고, 블루칩은 이 검증 과정을 모두 마친 작가들을 뜻한다. 물론 규율을 지키며 묵묵히 작품을 쥐고 있는 장기 소장자에게는 묘한 지점이다. 내 소장작의 가치가 이만큼 치솟고 있다는 짜릿한 기대감을 심어주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장의 과열이 씁쓸하기도 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순간인 셈이다.

숫자가 주는 일시적인 쾌감을 넘어, 가격만 너무 가파르게 상승하다 보면 가혹한 조정기가 또한 찾아올 수 있다. 무엇보다 단위가 바뀌는 순간, 작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작업 세계가 흐트러질 위험성이 도사린다. 급격한 자본의 유혹 앞에서 예술적 순수성을 시험받는 것은 작가나 컬렉터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다.

결국, 진짜 블루칩과 클래식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이 지독한 자본의 시험대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다. 플리퍼들이 피워 올린 불꽃에 눈이 멀어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 과열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작가의 롱런을 지탱해 주는 것. 눈앞의 호가에 흔들리지 않고 작가의 본질과 청사진을 공유하는 둔중한 책임감이야말로, 이머징 아티스트를 포스트 김환기, 이우환의 반열로 밀어 올리는 후원자의 자격이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그 한 점을 내 공간에 들인다는 것은 감성적 끌림과 이성적 판단을 모두 거쳐야 하지만, 결국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 만남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앞서 글로벌 시장에서 터전을 닦아 둔 국내 거장들의 성취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나 그 이름들에 기대어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블루칩은 이미 곁에서 작업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장 비싼 것을 집어내는 것이 아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기꺼이 함께 통과하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낸 작가만이 훗날 한 시대의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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