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투라서울에서 열리는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의 마지막 작품인 '스크린쉐어'(2024). 365개의 스케치북을 스크린 삼아 베트남 출신 무용수 담 반 후인의 공연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 푸투라서울
“서울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는지 한 번 맞춰보시겠어요?”
가회동 푸투라서울에서 20일부터
14일 서울 가회동 푸투라서울, 영국 출신 에스 데블린(55)이 물었다. “검색해보니 6200종이라고 나오더군요. 인간은 그중 단 한 가지 종입니다. 인간의 상상력 속에 이런 비인간의 존재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에요.”
그는 이 가운데 250종의 모습을 4개월 동안 그렸다. 높이 5m 드로잉 설치 ‘다시 집으로’ 앞에 서면 이들 생물종이 내는 소리와 8개 언어로 노래하는 합창단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도시와 생물종의 다양성을 표현하면서, 타자의 범위를 다른 생물로까지 확장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마이애비 비치에 설치한 에스 데블린의 '우리의 도서관(The Library of Us)'에 몰려든 사람들. AP=연합뉴스
데블린은 무대 미술가로 이름을 알렸다. U2, 비욘세, 아델, 켄드릭 라마, 더 위켄드 등의 무대를 설계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처럼 전 세계인들이 함께 본 장면도 그의 손을 거쳤다. 빛과 거울을 활용한 시각 확장이 장기인데, 2016년 이후 무대를 나와 미술관과 공공 공간에서도 작업하고 있다. 그는 “미술관 관객이든 슈퍼볼에 모인 10만 관객이든, 닥터 드레 등이 출연한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지켜본 1억 1900만명이든, 내 질문은 항상 같다”며 “그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봤고, 무엇과 마주했나’. 나는 이를 ‘거대한 규모의 친밀함’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의 첫 작품 '인피니트 라이브러리'에 선 에스 데블린. 사진 푸투라서울
그의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데블린, 다시 집으로’가 20일 개막한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공간은 1만100권의 책이 거꾸로 꽂힌 흰 책장. 그 위로 작가의 드로잉과 영상이 투사되며 “나는 내가 읽은 모든 책이며, 도서관은 낙원입니다” 등 책에 대한 에스 데블린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새와 곤충처럼 다양한 생물종의 움직임에 이어 책장이 열리며 거울 미로의 방이 나타난다. 그는 “거울은 자신을 보는 도구지만, 여기서 여러분은 거울에 함께 비친 타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며 “길 잃는 경험을 해 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365권의 스케치북으로 만든 대형 스크린 ‘스크린쉐어’. 스케치북으로 이뤄진 벽에는 런던에 사는 베트남 난민 출신 무용수 담 반 후인의 몸짓이 흐른다. 2008년의 춤추는 모습이 2024년의 나이든 모습과 마주한다. 영상이 끝나면 관객은 스크린의 한 조각을 이룬 스케치 한장을 골라 뜯어갈 수 있다.
서울에 사는 250여 생물종을 그린 드로잉 설치 '다시 집으로'(2026). 사진 푸투라서울
전시장 밖 긴 탁자에는 종이 두루마리를 깔아 관객들이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데블린은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견 충돌이 벌어지지만, 말없이 시선을 교환할 때면 이견도 잊은 채 서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최근 AI(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AI가 체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에스 데블린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유진 맥더모트 예술상, 런던 디자인 메달 로런스 올리비에상 3회, 토니상 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등을 받았다.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는 2024년 개관한 푸투라서울에서 레픽 아나돌, 안소니 맥콜 개인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내년 1월 17일까지. 성인 2만2000원.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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