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硏 보고서…담보 의존 벗어나 사업성 선별 역량이 핵심
대출담당자 성과 인센티브 미흡하면 선별 노력 기대 어려워
"구제금융 기대 있으면 선별 유인 사라져…시장 규율 작동해야"
정부가 은행권에 생산적 금융 확대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성패는 단순히 대출 총량을 늘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량 대출처를 가려내는 선별 역량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하나은행]
[중앙이코노미뉴스 정재혁] 정부가 은행권에 생산적 금융 확대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성패는 단순히 대출 총량을 늘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량 대출처를 가려내는 선별 역량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금융연구원 김석기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금융브리프 보고서에서 "생산적 금융이란 담보 위주의 저위험·저수익 영업에서 차주의 사업성과 성장 가능성에 기반을 둔 고위험·고수익 영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기존 담보부 대출은 부도가 발생해도 담보를 통해 회수율을 높일 수 있어 차주보다 담보 가치 분석이 우선시됐다. 반면 생산적 금융으로 담보 비중이 줄어들면 은행은 부도 확률이 낮은 차주를 골라내기 위해 차주의 사업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처를 선별해야 한다. 선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생산성이 높고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면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 전체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정교한 선별에 비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신용대출의 경우 대출담당자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해당 기업의 사업을 깊이 이해해야 하고, 은행은 산업별 전문인력을 별도로 고용해야 한다. 선별 과정에서 활용하는 정보는 수치화하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연성 정보(soft information)가 많아 조직 차원에서 담당자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인센티브 체계가 선별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담당자나 조직이 비용을 감수하며 정교한 선별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은행권은 선별 역량 확보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연초 삼성전자·SK온 경력의 변리사를 전문심사역으로 채용해 전력반도체 및 소재산업 여신심사에 투입했고 이달 22일까지 애널리스트·연구원·엔지니어 등 추가 채용도 진행 중이다.
KB국민은행은 IT 대기업 출신 변리사를 영입해 AI·반도체 심사를 맡기고 6대 첨단전략산업 전담 심사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첨단산업 기업 신규 여신 취급 시 KPI 평가점수를 1.2배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했고, 우리은행은 투자와 융자를 분리해 생산적금융 전담심사반을 별도로 꾸렸다. 전문 인력 채용과 심사 조직 특화라는 방향은 보고서가 강조하는 선별 역량 강화와 맥을 같이한다.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처방도 보고서의 핵심이다. 정상 대출에 대한 보상과 연체 대출에 대한 패널티가 동시에 작동하는 강력한 구조가 대출담당자의 선별 노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정부가 부실 은행을 구제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자 은행들의 우량 대출 선별이 강화됐다는 사례도 확인됐다.
반대로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일수록 더 위험한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있어, 암묵적인 구제 기대가 선별 유인을 갉아먹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성공적인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할 만한 위험인지 선별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개별 대출담당자 수준부터 은행 전체 수준까지 선별 노력에 따른 보상과 패널티가 일관되게 이어져야 하며, 선별에 성공해 얻은 이익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실패로 인한 부실은 스스로 책임지는 시장 규율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은행 퇴출은 경제 전반에 외부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사전적인 건전성 규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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