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연합뉴스
AI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누가 호황의 과실을 가져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성과급과 주가 급등이 일부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 반면,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한국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최대 6억 성과급, 중소기업 연봉 17배 수준”
영국 일간 가디언(The Guardian)은 3일(현지시간) AI 반도체 붐이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 이익이 특정 기업과 투자자에게 집중되면서 사회적 불평등 논쟁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한국이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는 국가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수요 급증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올해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최대 7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이러한 기대감은 코스피를 사상 처음 9000선 위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호황의 효과는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가디언은 기본연봉 8000만원 수준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주식보상을 포함해 수년간 최대 6억원에 가까운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한국 중소기업 평균 연봉의 약 17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초 직원들에게 월급의 약 30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고, 내년에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함께 전했다.
반도체 산업이 집중된 수도권 남부에서는 소비 증가도 전했다. 지난 5월 한 백화점에서는 보석 매출이 146%, 고급 시계 매출은 85% 증가했고,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위치한 경기 이천에서는 지난 2월 수입차 등록 대수가 전년보다 108% 늘었다. 반도체 기업 통근버스 노선 주변 아파트 가격 역시 서울 평균보다 약 4배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성과급도 나눠야 하나”…지역화폐까지 번진 논쟁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연합뉴스
가디언은 그러나 이런 호황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다고 짚었다. AI 반도체로 발생한 막대한 초과이익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미 비슷한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 4월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성과급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거나 전국민에게 재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대기업 혼자 만든 성과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인 만큼 내수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면 “기업이 번 돈을 왜 국민에게 나눠주냐”며 재산권 침해와 이중과세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왔다.
정부도 공론화 착수…“반도체 초과이익, 어디까지 나눌까”
논의는 최근 정부 차원으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중 ‘반도체 초과이윤 배분과 AI 시대 노동 전환’을 주제로 사회적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당초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에서 출발했던 논의는 현재 반도체 산업이 만들어낸 초과이익을 사회 전체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로 의제가 넓어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업의 정당한 이익에 정부가 개입할 권한은 없다”면서도 “기존 문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초과이익이 발생했다면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토론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을 비롯해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배당금, 반도체 이익을 기금으로 조성해 미래 산업에 투자한 뒤 수익을 국민에게 환원하는 국부펀드 구상 등도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노동부는 토론 결과를 향후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에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정책 초안인 녹서를 먼저 공개한 뒤 노사와 기업,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논의 절차도 추진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러한 논쟁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에서도 드러났다고 소개했다. SK하이닉스 지배구조의 핵심인 SK㈜ 지분을 어느 시점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재산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은 오랜 기간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와 산업정책 지원 속에서 성장했다”며 “기업들도 오늘의 성과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기반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한국이 여전히 높은 노인빈곤율과 주거비 상승, 제조업 고용 감소, 자영업 폐업 증가 등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안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다른 산업은 상대적으로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AI 반도체가 만들어낸 막대한 부를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지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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