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탄소중립·AI…3가지 흐름이 키우는 HVAC의 존재감
에너지 전환 시대 수혜 산업, 투자업계도 시선 집중
삼성·LG·SK, 에너지 플랫폼 측면의 HVAC 역량 강화 중
챗GPT로 생성한 AI 이미지입니다.
[오피니언뉴스=박정훈 기자]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이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에어컨과 보일러 중심의 단순 설비 산업으로 인식됐던 HVAC는 최근 기후 변화, 탄소중립 정책 그리고 인공지능(AI) 생태계 확산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리면서 전략 산업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HVAC를 '미래 전략 산업'으로 상정해 두고 관련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기후·에너지·AI가 만든 구조적 성장의 국면
HVAC는 난방(Heating), 환기(Ventilation) 그리고 공조(Air Conditioning)의 약자로 이들을 하나의 기술 카테고리로 묶어낸 용어다.
HVAC 산업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의 구조적 변화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혹한이 잦아지면서 효율적인 냉난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건물 부문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HVAC는 전력 수요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특히 냉방 수요 증가는 향후 전력 수급 구조까지 바꿀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도 산업 성장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화석연료 기반 난방을 전기식 히트펌프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건물의 설비를 교체하는 레트로핏(Retrofit·기존 설비 개선)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AI 산업의 성장도 HVAC 산업의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있다. AI 인프라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열을 발생시키는 시설로 고성능 냉각 시스템이 필수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AI 서버 증가와 함께 관련 공조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HVAC는 더 이상 인프라의 보조 설비가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의 핵심 요소로 재정의되고 있다.
글로벌 HVAC 시장 성장 추이 전망. 사진=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
수요가 늘어난다. 돈이 모인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는 시장 규모 확대 전망으로 이어진다. 많은 기업들이 HVAC 시장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관련 산업의 성장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는 2025년 1746억 달러(약 261조 원) 수준이었던 글로벌 HVAC 시장 규모가 연평균 약 5.9%대의 성장률로 성장해 오는 2034년 2900억 달러(약 43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조사기관인 '모도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는 지난해 약 1011억 달러(약 151조 원) 수준이었던 HVAC 관련 장비 시장 규모가 2031년에는 1614억6000만 달러(약 241조 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유지보수와 에너지 관리 등 서비스 시장까지 포함하면 산업 전체 규모는 훨씬 커진다는 것이 모도어 인텔리전스의 분석이다.
국가별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최대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도시화와 건설 경기, 기후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같은 고부가 산업이 HVAC 수요를 끌어올리는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 시장도 같은 흐름의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모도어 인텔리전스는 지난해 국내 HVAC 시장 규모를 65억 달러(약 9조7350억 원) 수준으로 분석하며 2031년에는 98억 달러(약 1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에너지 효율 규제, 보조금 정책, 데이터센터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 HVAC 시장의 성장 전망. 사진= 모도어 인텔리전스
보조 설비 아닌 '에너지 플랫폼'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시장 변화를 기회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독일의 글로벌 HVAC 기업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지난해 인수한 이후 스마트빌딩 및 데이터센터 HVAC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자사의 IoT 플랫폼과 AI 기술을 결합해 건물 에너지 관리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이는 HVAC를 단순 제품이 아닌 데이터 기반 에너지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B2B HVAC 시장에서 일찌감치 존재감을 키워온 대표적인 기업이다. 대형 건물용 공조 시스템과 고효율 인버터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HVAC를 가전사업의 연장이 아닌 독립적인 성장 축으로 설정했다. 특히 상업용 빌딩과 산업용 설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글로벌 기업들과 정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LG전자는 "2030년 회사의 전체 매출에서 B2B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HVAC는 전장, 상업용 디스플레이 등과 더불어 LG전자 B2B 사업을 대표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직접적인 HVAC 장비 제조보다는 주력인 에너지 분야와의 접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산업에 접근하고 있다. 자사의 냉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과 HVAC를 연계해 통합 에너지 솔루션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HVAC가 단일 산업이 아니라 전력과 화학, 데이터 산업이 결합된 복합 산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글로벌 공조산업 전시회 '모스트라 콘베뇨 엑스포'(MCE, Mostra Convegno Expocomfort) 2026에 참가한 LG전자가 전시한 공기열원 히트펌프 실내기 컨트롤 유닛, 하이드로 유닛, 콤비 유닛 3종 HVAC 제품. 사진 제공= LG전자
투자업계도 관련 산업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 조철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주거용 및 상업용 HVAC 시장에서 친환경·고효율 제품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중장기적 관점의 수익성 성장 전망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이주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AI 생태계의 확산은 PC와 서버 시장뿐만 아니라, 관련 인프라인 HVAC 시스템에도 '100년에 한 번 있을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특히 AI 데이터센터 구축 시 필수적인 냉각 시스템의 수요 증가가 산업 가치 상승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구동의 보조 역할에서 출발한 HVAC 산업은 이제 건물의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을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AI와 데이터 기술이 결합되면서 산업의 확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HVAC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설비가 아니라, 미래 에너지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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